해설서4: 미 대사관 비밀문서와 19대 총선 후보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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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해설서는 2012년 4월 11일 총선을 앞두고 특집기고 형식으로 특정한 주제를 선정한 뒤에 그 주제에 해당되는 미 대사관 전문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발췌하고 약간의 해설을 첨부하는 형식을 사용해 독자의 이해를 한층 도우려는 야심찬 도전이라고 해야겠다. 필자는 본 위키리크스 코리아 사이트와 필자의 누리집을 통해 그 동안 위키리크스에 유출된 미 대사관문서가 공개된 이후에 국내에서 가장 많은 대사관 전문을 번역해온 사람이다. 해당 발췌된 전문은 전부 필자의 번역이다.

 

 

2007년 10월 11일 중앙일보

이명박과 정두언 (서대문을)

이명박 선대위 전략기획단 총괄팀장 정두언

가. (해설) 아마도 필자와 같이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정치를 잘 몰랐던 사람도 정두언이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부터 정무 부시장을 지내는 등 측근 참모란 사실은 알 것이다. 위키리크스에 유출된 미국 비밀문서를 보면 미 대사관도 그가 핵심측근인 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정두언과 관련된 비밀전문은 총 10개가 있다. 일단 2007년 대선을 앞둔 시점인 2007년 10월 19일 “이명박, 공식 선거대책위원회 공개”란 제목으로 타전한 전문을 보면 오늘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이재오와 함께 정두언이 가장 영향력있는 4명의 참모 중에 한 명이며, 이명박 선대위 전략기획단의 총괄팀장으로 선대위 조직의 핵심요소를 맡고 있다고 나온다. 필자는 사실 정두언이 ‘BIG 4’인줄 몰랐는데, 그 점은 당시 중앙일보 2007년 10월 11일 “이명박 옆 4인 누가 더 셀까” 란 제목의 기사를 보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나만 몰랐다?!

5.(민감하지만비분류) 공식적인 선거운동조직의 출범과는 관계없이, 4명의 가장 영향력있는 4명의 이명박 참모는 그들의 권한을 유지할 것 같다. 이들은 국회부의장이며 손위 형인 이상득; 전 한국갤럽회장인 최시중; 한나라당 최고의원 이재오; 그리고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정두언이 해당된다. 이재오는 이명박 선대위 부의장으로 전략홍보담당이며, 정두언은 전략기획단의 총괄팀장으로 조직의 핵심요소이다. 선대위 비공식최고의결기구인 “6인회의 협의”는 이명박, 이상득, 최시중,전임 국회부의장 박희태, 이재오, 그리고 김덕룡 한나라당 의원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들은 일주에 2번 회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이 손수 뽑은 충성스런 정두언

나. (해설) 또한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이 후보로 선정된 후 타전한 2007년 9월 18일 전문을 보면 이명박이 충성스런 정두언 의원을 손수 뽑았다(handpicked)란 표현이 나올 만큼 그가 충성스런 심복 이였음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로 하여금 9월 7일 발표될 선대위 직책을 수행할 “이명박의 사람들”을 정두언 의원이 뽑도록 했다고 전하고 있다. ‘BIG 4’로써 그의 역할의 크기를 알 수있는 대목이다.

2. (기밀) 이명박이 8월 20일에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낙점되면서 사실상 당을 총괄하는 지위가 그에게 주어졌다. 이명박의 참모 임성빈은 9월 13일 대사관 정무 직원과 회동하였다. 임성빈은 그 자리에서 이 후보가 한나라당의 체질을 전통적인 구조에서 이명박이 CEO로 있던 현대 건설과 더 흡사한 구조로 변모시키려 한다고 확인해 주었다. 이명박은 그의 캠페인 준비를 총괄할 팀장으로 충성스러운 정두언 의원을 손수 발탁했지만, 이명박이 정 의원에게 9월 7일에 예고된 선대위 인선에서 “이명박 사람”을 발탁하도록 했다고 알려졌다. 과거와의 달리 다른 모든 고위 당직자들과 의원들은 선대위에서 제외되었다. 이를 두고 한국 언론들은 “초경량”이라고 부르고 있다. 왜냐면 선대위가 오로지 실무급 관계자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선대위 구성은 전적으로 이명박 지지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실업계와 언론계뿐만 아니라 학계 출신의 젊은 전문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학계 쪽 인사는 대부분 이명박의 모교인 고려 대학교 출신이다.

정두언 날 몰라!

다. (해설) 정두언은 이렇듯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헌신했다. 그러나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 김무성(19대 공천탈락) 의원에 따르면, 무언가 이명박에게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2008년 6월 9일 촛불시위가 한참일 당시 미 대사관 비밀전문을 보면 그 내용이 나오는데, 이명박 대통령 3명의 보좌관들 이름을 언급하면서, 고의로 정보를 차단한 것이 이 대통령이 소고기 협정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대통령이 모르는 이유라고 비난을 한 대목이 나온다. 일종의 불 난데 부채질 하는 격인데, 이들 두고 김무성 의원은 대선 때 참모인 자신이 3명의 보좌관들 때문에 열외 취급받으면서 억울해서 한 소리라고 대사관 정치 담당관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흥미로운 장면이다. 일종의 불 났는데 ‘불이야!’라고 소리는 커녕 ‘나 안 죽었어’라고 한 소리 한 격이다. 아마 이명박 가카께서 이 때부터 ‘격노’하신 모양이다. 청와대를 흠집 잡아서 무능력하게 보이게 한다고 몹시 화를 냈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듯이 이명박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정두언은 19대 총선 서대문 을 지역구에서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6.(민감하지만비분류) 6월 7일 막역한 예전 친구인 정두언은 조선일보에 이명박 대통령이 보좌관들에 의해 고의로 정보가 차단되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 것이 왜 대통령이 쇠고기 협정에 대중적 반감에 대해 그렇게 무지한지 말해준다고 했다. 정두언은 대통령을 속이고, 권력을 남용했다면서, 3명의 대통령 보좌관과, 한 국회의원을 비난했다. 4명중 가장 유력하게 정두언이 지목한 이는, 박영준인데, 대통령의 기획조정비서관이다. 박영준은 정두언의 주장을 ”근거 없는”것이고, ”인신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언론 보도에선 언급되지 않은 한 의원을 이상득, 즉 대통령의 큰형이라고 추정했다.

7.(기밀) 정두언의 주장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나온 것이다; 이명박의 지지도가 17퍼센트 정도이다. 6월 8일에, 고참의원인 김무성은 정치 담당관에게 정두언이 억울해서 하는 소리라고 했다. 정두언이 대선 선거운동 내내 이명박의 가까운 참모였는데, 그가 자신이 언급한 바로 그네들에게 열외로 밀려났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몹시 화가 났는데, 그 이유는 직원들의 흠을 들추어, 이명박을 무능해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김무성은 정치담당관에게 말하길, 자신이 박근혜에게 총리 제안을 받으면, 자리에 가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얻을 게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석: 몇몇은 이 대통령이 한승수의 사임을 수용하고, 박근혜에게 그 자리를 맡아 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주석 끝.) 김무성은 자신이 전에 박근혜에게 쇠고기 문제에 조용히 있으라고 조언했다고 했다.―그녀는 이 제안을 무시했는데, 그녀가 몇 주전에 재협상을 요구 했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녀는 그 문제에 조용히 하고 있다.

이명박과 이재오 (은평을) 그리고 박근혜

이명박과 이재오 해외 나들이

라. (해설) 이재오는 정몽준 편에서 필자가 설명한 바있듯이 이명박과의 인연은 이명박이 15대 종로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에 김유찬의 선거자금 관련 폭로로 인해 이명박은 재판을 받던 중에 의원직을 사퇴하고 나서, 1998~9년 ‘워싱턴 나들이’를 했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워싱턴 생활기에 대한 미 대사관 비밀 전문을 살펴보자. 고려대학교 함승덕 교수가 대사에게 당시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명박은 (해외생활)생존의 열쇠가 자신이 우선 정몽준에게 환심을 얻고 다음에 이재오에게 환심을 얻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워싱턴 디시에서 머물렀던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몽준과 이재오와 이명박의 유대관계는 이때부터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은 (해외생활)생존의 열쇠가 자신이 우선 정몽준에게 환심을 얻고 다음에 이재오에게 환심을 얻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워싱턴 디시에서 머물렀던 것이다. 이태식은 대통령과 같은 “경주 이”씨 집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함 교수는 한승주가, 그 역시 정몽준과 긴밀한 유대관계가 있는데, 이태식을 대체할 후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두 사람은 개인주의적 정치가 자체의 결점이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은 개인적 관계가 계파의 경계를 아우를 수 있다면 때때로 타협이 가능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과 이재오 유대관계의 견고함

마. (해설) 그렇다면 이명박과 이재오의 유대관계는 어느 정도일까? 그 해답을 얻을 수있는 장면이 2009년 1월 7일 미 대사관 외교문서에 등장하는데,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이 계류 중인 85개의 법안을 상임위 법안토론과정을 배제한 체 본회의에 직권 상정하면서, 국회에서 난장을 치를 당시 고려대 함승덕 교수와 명지대 김형준 교수 그리고 미 대사관 정치 참사관과의 회동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있는데, 대선 캠프의 외교정책 담당자인 고려대 현인택 교수가 요직을 임명되지 않은 것은 이명박의 자문역인 이상득과 이재오의 환심을 사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두 교수가 정치 참사관에게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다시 말해서, 이상득과 이재오의 눈 밖에 나면, 대선 캠프의 관계자들도 한 자리 확보하는 게 요원하단 소리인 것이다. 이재오의 권세는 이 정도로 상당했던 것이다.

7.(기밀)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워싱턴 디시에서의 생활 동안 이명박을 돌봐 주었기 때문이라고 둘은 주장했다. (주석: 이명박은 1998~9사이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일원으로 일 년을 보냈다. 그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국회에서 제거된 후의 일이다.) 반면에, 선거운동기간 중 외교정책 담당자중에 한 명인, 고려대 현인택 교수는 지금까지 어떤 자리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고 했다. 김 교수와 함 교수는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이 현인택이 자신이 이명박의 자문역인 이상득과 이재오에게 환심을 사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고 말했다. 현인택의 영향력 행사에 실패한 또 다른 예는 그보다 연배가 낮은 선거참모인 고려대교수 김성한이 미국방문에 선택돼 외교안보비서관 김태호와 한승주를 동반해 미국의 오바마 팀을 만난 점을 들었다.

바. (해설) 이명박과 이재오 유대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를 보자. 2008년 이명박이 대선을 승리한 뒤 4개월 만에 치러진 4월 9일 총선 다음날 본국으로 전송한 미 대사관 비밀전문을 보면 “친이계”인 이재오와 이방호가 낙선한 결과를 밝히면서, 청와대 한 접선책이 낙선한 두 이씨를 행정부에 요직으로 임용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해설 주: 문국현이 이재오를 꺾었는데, 아는 사람은 다 아시다 시피 이명박 괴씸죄에 걸려1)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을 받았는데 결국 공직선거법 47.2조 위반으로 의석을 잃었고, 그 뒤에 재보선에서 이재오가 당선되어 은평을 지역구로 복귀했다.) 그 뒤에 청와대 접선책이 예고한대로 이재오 의원은 2010년 8월 8일에 특임장관이 되었으니까 접선책의 정보력은 정확함이 입증된다.

6.(민감하지만비분류) 4월 9일 선거는 이 대통령에게는 양질의 승리이다. 총선결과로 100명의 “친이계” 국회의원을 심었는데, 그러나 이들이 다수그룹을 형성하려면 상당한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이재오와 이방호 같은 이명박의 핵심 측근 중 일부의 놀랄만한 패배는 친이계 내부의 개편으로 이어질 수있다. 청와대의 한 접선책은 낙선한 두 이씨와 다른 핵심 보좌관들은 행정부에서 다른 자리를 확보할 것이 분명하다고 언급했다.

이재오 그 시련의 시작

사. (해설) 이렇게 권세가 있던 이재오는 시련도 많이 겪어왔는데, 비단 18대 총선에서 문국현 후보에게 은평구 을 지역구에서 패배한 것을 차제하더라도 말이다. 그 고난과 갈등의 개인사를 연대순으로 하나씩 살펴보면, 우선 첫 단추라고 할만한 사건은 2006년 7월 11일에 있었던 한나라당 전당대회 표결 결과, 아깝게 이재오가 대표자리를 강재섭 당선자로 인해 놓친 일화가 있는데, 당시 강재섭이 이재오가 운동권 출신이라고 ‘색깔론’을 제기하면서, 당대표 선거의 70퍼센트에 해당되는 소속당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 투표에서 쓴 맛을 본 이후, ‘색깔론’때문이라며 불만을 토로했고, 결국에 이재오는 최고의원 사퇴에 무게들 두고 순천 선암사에 내려가 칩거에 들어간다. (해설 주: 당시 전당대회는 박근혜·이명박 대선 주자의 대리전이였단 평가가 우세하다.) 강재섭과 그 일행은 선암사에 내려가 이재오 달래기에 들어 갔고, 그 결과 화해의 제스처로 이재오 측은인 안경률을 제1사무부총장으로 강재섭 대표가 선임했다고 2006년 7월 24일 미 대사관 비밀문서에 그 내용이 나온다. 이렇게 친박계로 불리던 강재섭이 대표로 당선된 이후, 2007년 초 당내 대선 경선 규칙을 놓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마찰을 빚을 당시 강재섭 대표가 박근혜의 뒤통수를 친 일화가 있는데, 이미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시절부터 대구 광역시 서구 을 지역구에서 연속해서 5차례 국회의원을 지낸 후 당대표를 거처 지금은 야인된 강재섭은 이 해설서의 주인공이 아니므로 박근혜·이명박 간 경선 규칙에 강재섭이 이명박 손을 들어준 내용의 자세한 내막은 생략하기로 한다. 여하간 이렇게 이재오계와 친박근혜계의 길고 긴 싸움은 대선 경선을 앞둔 시점인 정당대회부터 시작한 것이다.

3.(민감하지만비분류) 이재오: 이 후보는 당대표 선거전에서 2위에 올랐다. 그는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었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이재오는 고등학교 교사의 이력으로 시작해서, 국가안보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거의 10년간을 감옥에서 보낸 민주주의 운동가였다. 현재는 국회운영위원회, 정무위원회, 정보위원회의 일원이다. 7월 11일에 패배 이후에, 이재오는 자신이 주장하는 지도부 선거에서의 불법적인 선거운동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5일간에 한국 남부지방에 있는 불교 사원에 내려갔다. 그는 강재섭의 인신공격 발언에 대해 공격했고, 특히 그가 보수 한나라당으로 전향한 이후 많은 세월이 지난 마당에 자신을 운동권이라고 규정지은 점에 감정이 상했다. 이재오는 7월 18일에 최고위원회에 복귀해서, 강 대표와 공식적으로 화해했다. 화해의 제스처로 강재섭은 이재오의 측근인 안경률을 당의 제1사무부총장으로 선임했다. 이재오는 강재섭 보다 훨씬 인기가 높은데, 이재오가 한나라당 원내총무로 7개월 동안에 쌓은 인지도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대표 선거전은 70퍼센트 한나라당 선거인단 투표와 30퍼센트의 여론조사 결과로 결정 난다.

이재오 박근혜와의 갈등사

아. (해설) 박근혜와 이재오의 갈등은 한나라당 경선 이후에 대선 선거전이 한창이던 2007년 11월 6일 “이회창 후보: 삼세번만의 행운”이란 제목을 달고 본국으로 발송한 미 대사관 비밀 전문을 보면 잘 드러난다. 이회창이 제목처럼 삼세번만의 행운을 노리고 출마선언을 하게 된 것은 이명박이 당 내부 단속을 못한 무능력이라고 미 대사관은 주장하면서, 경선 중에 박근혜를 공공연히 비판한 이재오가 박근혜 진영을 달래기 위해 사과를 했지만 거부당했고, 당시에 이명박이 대선을 승리하면 신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등 친박계의 심기를 건드렸고, 박근혜 측은 일체 거부했다는 내용이다.

9.(기밀) 이회창의 출마선언은 한나라당 내부 분열과 이명박이 자기 주변으로 한나라당을 확고히 단결시키지 못하는 무능력의 증거인 것이다. 이명박 진영은 최근에 박근혜의 지원을 확보하기위해 손을 뻗었다. 한나라당 의원 이재오는 이명박의 가까진 측근인데 한나라당 경선 동안 박근혜를 자신이 공공연한 비판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박근혜와 그녀의 지지자들에 대한 이재오와 이명박의 구애시도는 진실성이 없고 너무 빈약하고 너무 늦은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박근혜는 지금까지는 이명박 진영의 관계회복을 위한 모든 시도를 거부했다. 이재오는 최근에 현재 불화에 기름을 붓기라도 하듯이, 만일 이명박이 12월에 승리하면, 한나라당이 지나치게 보수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새로운 정치 정당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재오·박근혜 갈등, 그 결과와 네탓 공방

자. (해설) 2008년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 이명박에겐 비싼 대가 치른 승리”란 제목을 달고 총선 다음 날 보낸 비밀 전문을 다시 보면, 이방호와 이재오 등의 친이명박계 지도자가 패배한 중요 이유는 박근혜가 이재오와 이방호가 이른바 ‘공천학살’을 했다고 주장한 박근혜와 친박연대 때문에 그 두 의원이 패배했다고 “권력다툼”이란 소대목을 달고 대사관이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7.(기밀) 이명박계 핵심 지도자들이 패배한 중요한 이유는 박근혜이며, 그녀가 공천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이재오와 이방호가 희생시켰다고 그 협의를 두었었다. 대구의 자택에서 칩거하면서, 어떤 후보의 선거운동도 박근혜는 거부했다. 그러나 그녀의 지지자들은 정치적 명분에 동조하면서, 심지어 친박연대란 신당을 출범시켰다. 이들은 핵심 친박계 인사들을 홍보하고, 이명박 진영의 지명도 있는 의원들을 표적으로 삼았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손쉬운 선거전을 치렀을 해당 의원들 중 다수가 패배했다.

8.(기밀) 박근혜의 지지자들은 56개 지역구에서 당선됐는데―한나라당 당내에 30명과, 무소속 12명, 그리고 친박연대 후보 14명 등이다. 그래서 전체 공천 및 선거 과정은 박근혜가 주요한 정치적 인물로써 크게 보면 국회의원과 국민 사이에서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입증했다. 게다가, 그녀는 적어도 더 이상 국회에서는 친이계 국회의원인 이재오나 이방호 그리고 박형준하고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의원직을 잃었다.

(해설 계속) 또 하나의 4월 9일 당일에 보낸 전문에서도 친이·친박간의 적대감을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재오와 이방호가 총선에서 패한 것은 박근혜와 그 세력을 밀어내려는 시도라고 관측통의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

2.(민감하지만비분류) 한나라당이 다수당을 차지함으로써, 비록 약하기는 하지만,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자체 개혁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다. 그러나 이명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두 당선된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 이명박과 가장 가까운 동지로 간주되는 이재오는 운하 반대 공약을 내건 창조한국당의 문국현에게 패했다. 다른 핵심 측근인 이방호도 민노당의 강기갑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대부분의 관측통들은 그런 패배의 원인을 공천 과정에서 이재오와 이방호가 만들어 낸 적대감 때문이라고 봤다. 특히 박근혜와 그 세력을 밀어내려는 시도가 그렇다.

이재오 총선 패배는 친박계 공천배제가 원인

카. (해설) 이재오가 총선 패배의 원인이 친이계가 친박계를 공천에서 배제한데 원인이 있다는 내용의 전문이다. 18대 총선에서 그가 패한 원인이 친박계와의 공천 다툼 및 갈등에 있을까? 그는 문국현에게 크게 패했었다. 과연 친박계와 갈등도 없는 이번 19대 총선에서 그가 살아 남을 지는 오로지 은평을 지역구 주민의 표의 달려있다. 만일 은평을 지역구 유권자 전체가 필자의 본 미국 대사관 비밀 전문 내용을 읽어보고 투표장에 나선 다면 결과는? 이는 가장자체가 힘든 가정이다. 허나 투표는 그냥 단순한 요식행위가 아니다. 후보자에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8.(비분류) 공식선거운동기간은 보통 2주 미만으로 짧은데, 새 정부 출범과 공천심사가 겹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부분적으로 당내 이전 투구로 인해 외교정책이나 국내정책은 토의 조차 없고, 이명박 대선 캠프에 핵심공약인 대 운하 기획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얄궂게도 대 운하 기획자인 한나라당은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광범위한 저항을 표하는 국민 정서를 감안해 언급조차 피하려 한다. 같은 이유로 통합민주당의 지속적으로 쟁점화하려는 시도를 하고있다. 운하반대를 체감할 수 있는 것은, 전 대통령 후보인 문국현이 넉넉한 표차로 한나라당 운하 수호자인 이재오를 서울 은평구 지역에서 압도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재오의 몰락은 친 이계가 박근혜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을 공천에서 배제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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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고리

1)
해설 주: 이명박의 문국현 죽이기 법정공방과 어처구니 없는 판결내용의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바깥고리를 읽어 보시길 강력히 권고 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제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