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서 3. 미 대사관 비밀전문과 정몽준 동작을 후보

  • 본 해설서는 2012년 4월 11일 총선을 앞두고 특집기고 형식으로 특정한 주제를 선정한 뒤에 그 주제에 해당되는 미 대사관 전문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발췌하고 약간의 해설을 첨부하는 형식을 사용해 독자의 이해를 높이려는 야심찬 도전이라고 해야겠다. 필자는 본 위키리크스 코리아 사이트와 필자의 누리집을 통해 그 동안 위키리크스에 유출된 미 대사관 전문가 공개된 이후에 국내에서 가장 많은 대사관 전문을 번역해온 사람이다. 해당 발췌된 전문은 전부 필자의 번역이다.
  •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03/31 15:15

 

정몽준 첫 번째 노무현과의 결별

가(해설) 정몽준은 유독 대통령들과의 인연이 깊은데, 우선 그가 킹메이커 역할을 맡았다고 볼 수있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을 살펴보자. 노무현과의 2002년 대선 당시 정몽준과의 인연을 다루는 장면이다. 2008년 21~23일 인수위 방미 대표단 단장 역을 맡은 정몽준과 그 일행들이 미국 방문을 앞둔 시점인 2008년 1월 11일 작성해 미국 본국으로 전송한 내용을 보면 정몽준이 한일 월드컵 성공에 공을 인정받아 무소속 대선 후보로 상당한 지지를 모았고, 노무현과의 단일화 이후 노무현을 지지 했지만 대선 바로 전날 지지를 번복한 내용을 설명하면서, 그 이후로 노무현에 날선 비난을 펼쳤으며, “대사와의 개별적인 회동에서도, 자신이 노무현이 정권을 잡게 한 것과, 노무현 정부의 많은 실정(失政)에도, 개인적으로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언급했었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내용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점은 대부분의 국민이 알듯이 노무현과의 관계는 뒤끝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면 두 번째 대통령과의 관계는?

2. (민감하지만 미분류) 정몽준은 대기업 현대 창업자의 아들 중의 한 명으로 대통령을 꿈꾸는 5선 의원이다. 실제로, 전문가 대부분은 201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실세인 박근혜에 대항할 이명박의 후계자로 정몽준을 꼽고 있다. 정몽준은 한국축구협회의 수장이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성공에 대한 공을 인정받고 있다. 그 해에 그는 높은 인기를 구가하면서, 2002년 대선 가도에서 막강한 제삼의 대선 캠페인을 펼쳤었다. 그는 결국 대선을 접고 노무현을 지지했는데, 대선 선거일 바로 전날에 그의 지지를 거둬들이고 말았다. 그 이후에 정몽준은 노무현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계속했는데, 대사와의 개별적인 회동에서도, 그가 노무현이 정권을 잡도록 했고, 노무현 정부의 많은 실정(失政)에도 개인적으로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버시바우 대사에게 언급한 바 있다.

두 번째 대통령과의 만남―새 출발?

나.(해설) 두 번째 대통령은 당연히 이명박 대통령이다. 정몽준이 노무현과의 인연이 파탄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는 또 다시 왕이? 필요했던 것일까? 사실 정몽준과의 깊은 인연을 만들어준 일화를 보면, 이명박은 당시 대통령의 뒤꿈치도 못 따르던 시절이다. 때는 바야흐로 이명박이 15대 총선 종로에 출마해 당선된 이후인데, 선거기획을 담당했던 참모인 김유찬은 이명박이 선거비용을 거짓으로 신고했다고 깜짝 폭로를 하면서,이명박은 선거 자금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되었고 재판을 받던 중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 이후 1998~9년 사이 잠시 영욕의 속세를 벗어나 조지 워싱턴 대학의 일원으로 일 년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독자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의 영어 솜씨는 형편이 썩 좋지 않다. 그의 영어 솜씨에 대한 대사의 평가가 있는 전문이 있는데 여기선 생략하기로 하고, 당시 워싱턴 생활기에 대한 미 대사관 비밀 전문을 살펴보자. 고려대학교 함승덕 교수가 대사에게 당시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명박은 (해외생활)생존의 열쇠가 자신이 우선 정몽준에게 환심을 얻고 다음에 이재오에게 환심을 얻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워싱턴 디시에서 머물렀던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몽준과 이재오와 이명박의 유대관계는 이때부터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또 하나의 사실은 한승주가 정몽준과 친분이 있어, 당시 주미 대사 이태식을 대체할 것이라고 함 교수가 말하는 장면이다.

이명박은 (해외생활)생존의 열쇠가 자신이 우선 정몽준에게 환심을 얻고 다음에 이재오에게 환심을 얻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워싱턴 디시에서 머물렀던 것이다. 이태식은 대통령과 같은 “경주 이”씨 집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함 교수는 한승주가, 그 역시 정몽준과 긴밀한 유대관계가 있는데, 이태식을 대체할 후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두 사람은 개인주의적 정치가 자체의 결점이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은 개인적 관계가 계파의 경계를 아우를 수 있다면 때때로 타협이 가능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왕의 남자 청와대를 바라보다

다.(해설) 그렇다면 정몽준이 언제부터 이명박 대선 캠프에 투신하기 시작했을까? 바야흐로 두 번째 킹메이커 역할을 하고 나선 시점은 역시 2007년 대선 선거전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2007년 12월 5일에 미국으로 전송된 3급 비밀 문서는 “이명박 BBK 추문 벗어나”를 제목으로 달고 있는데,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내용과 그 이후의 각 후보 진영의 반응 및 행보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번 해설서의 주인공인 정몽준도 부산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핵심을 말하면 검찰의 이명박의 협의없음 발표가 나기 전 예고편 격인 내용을 전해 듣고 정몽준은 이명박과 연대에 나섰다고 설명하고 있다.

4. (기밀) 지난주 이후 검찰은 이명박이 BBK 관련 혐의를 벗어날 거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임박한 검찰의 발표로 말미암아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이회창 후보와 단일화하고, 정몽준이 이명박과 합류하는 등 여러 부산한 이합집산을 촉발하였다. 또한, 다양한 민주당 의원들과 관계자들이 이탈하면서 이회창을 지지하거나 이명박 지지를 서약하였다. 또한, 문국현 후보는 정동영과의 단일화 의향을 발표하였다.

라.(해설) 그 뒤로 6일 이후에 보낸 전문인 2007년 12월 11일 미 대사관 3급 비밀 문서에서도 같은 내용이 등장하는데, 당시 이명박의 당선이 확실시 되던 상황에 여당 정동영 후보의 선대본부장 정대철과의 대화 내용과 더불어 대사관의 견해를 첨가해 설명하면서, 박근혜가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를 하지 않을 것이고, 대신 이명박을 지원하기 위해 한나라당에 입당한 정몽준 의원이 대타로 나설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두 번째 킹메이커 역할을 하기 위해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이다.

4. (기밀) 지난주 이후 검찰은 이명박이 BBK 관련 혐의를 벗어날 거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임박한 검찰의 발표로 말미암아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이회창 후보와 단일화하고, 정몽준이 이명박과 합류하는 등 여러 부산한 이합집산을 촉발하였다. 또한, 다양한 민주당 의원들과 관계자들이 이탈하면서 이회창을 지지하거나 이명박 지지를 서약하였다. 또한, 문국현 후보는 정동영과의 단일화 의향을 발표하였다.

미 대사: 정몽준은 이명박에 충성맹세, 확실한 후계자

마.(해설) 미국 방문을 앞둔 인수위 대표단 단장이 된 정몽준의 인물을 평가하면서 대사는 대통령 선거 몇 주전에 한나라당을 입당했고 충성을 맹세했으며, 확실한 후계자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는 엄청난 재산가에 술 문제가 있고 플레이보이라고 말하고 있다.

3. (기밀) 정몽준은 엄청난 개인적 재산을 보유하고 있고(줄잡아 2억 5,000만 달러로 평가됨), 플레이보이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 몇몇 정치 접선책들은 그가 약간의 술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 중공업의 본산인 울산 지역구에서 1988년에 국회의원으로 처음에 당선됐으며, 그 이래로 매번 재선돼왔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울산지역 유권자들이 느끼기엔 밥 주는 주인 손을 물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고 믿고 있다. 정몽준은 박근혜의 초등학교 학급 친구이고, 한나라당의 경선 기간 중에 그녀를 도왔다는 소문이 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선거 몇 주전 분명하게 이명박에 대한 그의 충성 맹세를 했으며, 이명박의 측근 참모뿐만 아니라, 확실한 승계자로 부상했다.

바.(해설) 그럼 이제 그가 킹메이커에서 왕의 남자가 되었고, 대통령이 되는 길만 남았는데 그리 호락하지 만은 않다. 바로 위 부분 해설에서 보듯이 정몽준의 역할이 박근혜의 대항마로 상정된 듯한데, 박근혜와 정몽준의 향후 대결, 즉 2012년 대선의 경선 구도를 상정 해볼 수있을 것인데, 그 대목에 대해 파악할 수있는 내용이 2009년 1월 7일 함승덕 고려대 교수와 김형준 명지대 교수 그리고 대사와의 회의에서 차기 대통령을 전망해 보면서, 박근혜와 정몽준의 경선 구도가 될 것이며, 한나라당 내부의 반 박근혜 세력과의 규합을 통해 정몽준을 지지하고 나설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에 회의감을 표하고 있는 대목이다.

5. (기밀) 2012년에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의 회의감을 드려내며, 김 교수는 자신이 조사한 최근 여론조사를 언급했는데 80퍼센트의 응답자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인지 모른다고 응답했고, 단지 10퍼센트만 박근혜를 지목했다고 했다. 정치담당관은 김 교수에게 왜 그의 수치가 최근의 조선일보 여론조사와 다른지 질문을 했는데, 조선일보에선 최대 지지율인 36퍼센트의 응답자가 박근혜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호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신문 여론조사는 일련의 후보군중 최선의 후보를 묻는 방식이 반면 김 교수의 질문은 결과를 예상해보라고 묻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조사방식이 박근혜의 통계적 지지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수용한 것인데; 그녀의 강한 지지 층이 연세 드신 분들과 영남출신 그리고 보수층이란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 자신은 2012년 대통령 선거는 본질적으로 한나라당 경선에 참가할 박근혜와 정몽준 간의 대결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비록 정몽준이 당내에서 많은 지지도를 받지는 못하지만, 한나라당 내부에 반 박근혜 세력이 규합해서 정몽준을 지지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미 대사: 정몽준은 오입쟁이에 지적 깊이가 낮아

사.(해설) 해설을 따로 할 필요가 없으며 그냥 읽어보면 될 만큼 적나라 하다.

5. (기밀) 한국에 모든 부자와 권세가들이 그렇듯이, 정몽준을 둘러싼 많은 소문이 무성한데, 대부분이 그가 인생을 즐기는 낙천가이며, 오입쟁이라는 평가와 관련돼 있다. 현대 설립자 정주영과 그의 여자친구 사이의 태어난 아들인 정몽준은 오랫동안 적대적인 성향이었지만, 현대 설립자의 아들 중에 가장 성공적인 인물 중의 하나로 발돋움했다. 그렇긴 하지만, 정몽준은 실체적 내용에 대해 그가 필요한 만큼의 깊이가 있는 자이며, 사실상 다음 주에 워싱턴으로 향할 대표단에 지적인 부분보다는 대표단의 위상에 공헌하는 역할로 보인다. 버시바우 대사와의 최근 회동에서, 정몽준은 한승주에게 대부분의 환담을 떠넘겼는데, 이런 식은 방미 대표단의 워싱턴 방문 중에도 계속될 공산이 크다.

6. (기밀) 이명박의 인수위원회에서 정몽준의 위상이 커졌다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 정몽준은 무언가 약속을 받았는데―아마도 차기 2012년 대통령 후보 출마에 대한 이명박의 지지를 확보했을 공산이 크며, 그리고 어떤 시점에 총리 자리를 약속받았을 수도 있다; 둘째, 이명박이 정주영 대신에 김영삼을 지지했을 당시인 1992년 선거는 용서했을 공산이 크다. 이명박과 정몽준의 연합으로 박근혜의 세력에 대한 견제역할을 하고, 이명박의 이미지를 “일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이명박의 이미지인 추문과 뇌물 수수 등은 그렇게 해서 상대적으로 쉽게 잊힐 수 있겠지만, 스승에 대한 배신행위는(주: 정주영 대신 김영삼 지지) 쉽게 치부될 일이 아니다. 그가 결국에 청와대에 성공적으로 입성할지는 모르지만, 지금으로 봐 선 새 정부에서 큰 영향력 높은 인물로 부상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 성적은?

자. (기밀) 정몽준 대표가 당 대표로 있을 당시인 2009년 10월 28일 재보선 선거의 결과에서 한나라당이 수원에서 패배했는데 그 책임이 정몽준의 후보자 선택에 있었다고 당 내부 관계자들이 정 대표가 무능력하다고 불평하는 장면이다. 정 대표가 간택한 후보가 선거운동을 할수록 표가 떨어지고 있다고 낙담하는 장면이다. 덧붙여서 박근혜가 수원 선거전에 도움을 주지 않은 모양이다.

4. (기밀) 7년 만에 처음으로 집권당이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을 당선시키긴 했지만, 한나라당은 자체적으로 3곳 내지 4곳에서 당선될 거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보궐선거는 한나라당에는 실망스런 결과지만, 일부 언론보도에서 규정하듯이 “참패”는 아니다. 경기도의 수도 격인 수원 지역은 가장 세간의 주목을 받은 까닭은 수도권 지역 선거의 중요한 지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간발의 차로 승리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낙관했던 한나라당 내부 관계자는 만일 정몽준 대표가 수원에서 패배한다면 교체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했었다. 누구도 정몽준에 도전장을 던진 이가 아직 없지만, 당 내부 관계자들은 수원 지역을 당선 못 시킨 정 대표의 무능력에 낙담했다. 그들은 정 대표가 발탁한 수원 지역구 후보가 너무 대중적 호소력이 없어서, 그녀가 선거운동을 하면 할수록 그녀의 득표율이 더 하락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 대표는 양산을 제외한 한나라당 후보 선거 캠페인을 하도록 당내 라이벌인 박근혜와 친박계를 설득하지 못했다.

부탁 말씀

아. 필자가 번역한 내용을 이곳 저곳에 게재하지 하지 않은 이유는 정보 전달의 신속성을 구실로 마구잡이로 올리다 보면, 번역의 특성상 용어 정리나 수정 사항이 발생하면 번역을 올린 모든 사이트를 수정해야 하므로, 시간 낭비를 자초한다. 그런 취지로 포와로 탐정의 번역 내용을 복사해 자기 글처럼 블로그에 올리는 행위는 저작권 이전에 일의 효율성과 정확한 정보의 전달의 문제다. 포와로 탐정의 초기 번역을 복사해 올린 블로그나 카페를 필자는 파악해서 북마크 해주고 있으며, 일일이 찾아가거나, 연락을 해서 복사한 번역글을 내려 달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시간 낭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다고 판단이 된 경우는 ‘희생양’이 될 수 있으니 삼가하기 바란다. 위키리크스 번역은 여느 전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그 정보량이 방대하며, 전문적인 용어와 이해가 필요한 구체적인 내용과 용어 사용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단순히 복사에 붙여 놓는다고, 정보의 소유자가 되거나 어깨에 힘줄 일도 아니며, 재수 없으면 저작권 위반 혐의로 좋지 않은 일을 당하기 십상이니 그 점을 간과하지 말기를 바란다. 진실은 구하는 자의 것이며, 진실의 깊이는 구하는 자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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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고리

    1. 정몽준-이재오 신 밀약설 막후 일요신문 2009년 10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