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최대 고용주, 개성 협상의 관건은 근로자 숙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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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SEOUL678 2009-04-28 08:30 기밀 주한 미국 대사관
  • 기 밀 SEOUL 000678
  • 국방부망 배포1)
  •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04/28/2019
  • 태그: PREL2), ECON3), KN4), KS5)
  • 제 목: 개성공단 최대 고용주, 개성 협상의 관건은 근로자 숙소 문제
  • 참조: SEOUL 342
  • 분류자: 정치 공사 참사관 조셉 윤6). 근거 1.4(b/d)
  •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3/05/18 16:35

요약

1. (기밀) 요약: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한국 정부가 공단 근로자 인원을 확대하기 위한 근로자 숙소 건설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가 근로자 숙소를 건설하도록 해서 10만이 규모의 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개성공단 확대가 가능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왜냐면 그렇게 하는 것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박성철 회장의 말이다. 그는 의류 회사 신원의 회장으로 북한 노동자 천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고 3천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요약 끝.

개성공업지구 확대

2. (기밀) 4월 27일 대사관 정무 직원은 박성철 신원 주식회사 회장과 회동하였다. 그 자리에서 박성철 회장이 전한 메시지의 요지는 근로자 숙소 건설을 통해 개성공단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 촉구하라는 것이다. 거의 4만에 달하는 개성공단 근로자는 2년 만에 “남한사람화” 되어, 자신만의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박성철은 말한다. 그는 또 남한의 사업 방식뿐만 아니라 생활 방식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개성공단 확대할 용의가 있다. 다만 그들은 북한 근로자에 미칠 영향이 제한되도록 신중을 기할 것이다. (북한이) 현대 아산 직원을 억류한 것은 북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남한 사람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박성철은 믿었다. 경우가 어떻든 북한 전역에서 노동력을 끌어와 개성공단 노동자가 10만 혹은 20만까지 확대될 수 있다면 그 파급 효과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과거 혹은 현재 북한과 이뤄지는 어떤 거래보다도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박성철은 만일 근로자 숙소가 건설되지 않는다면, 개성공단 확장은 (개성 근방에서 구할 수 있는) 약 5만 정도의 노동자로 인원이 제한되고 입주 업체는 점차 철수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3. (기밀) 박성철은 작년 현인택 통일부 장관에게 (근로자 숙소 관련) 이러한 뜻을 전달했지만, 현인택은 비핵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박진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근로자 숙소 건설의 당위성에 대해 명백히 견해를 같이하였다.

4. (기밀) 박성철은 최근 북한이 보여준 적의는 근로자 숙소 문제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당국자들이 그의 개성공단 부하 관리 직원에게 “매일같이” 근로자 숙소 문제를 언급한다고 말하였다. 4월 21일 6년 된 개성공단 재정 관련 거래조건 재협상 요구뿐만 아니라, 2008년 12월에 가해진 통행 제한과 3월 개성공단 임시 통행 차단은 모두 2007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담긴 근로자 숙소 관련 내용을 이명박 정부가 존중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다. (주석: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의 확대에 대한 큰 틀의 합의 이후에, 2008년 12월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제1차 회의를 마치고 발표한 성명에는 “남과 북은 개성공단 1단계 사업에 필요한 북측 근로인력의 충원에 협력하며, 이와 관련한 북측 근로자 숙소 건설,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출퇴근 편의를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2007년 10월 정상회담과 후속 회담은 정치적으로 논란이 있었고 이명박과 참모진들은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합의한 합의 내용에 구속되지 않을 거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참조전문 가 주석 끝)

5. (기밀) 박성철은 최근 북한의 행동에서 북한이 개성공단 계속 열어 둘 작정임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만일 그들이 폐쇄하길 원했다면, 오래 전에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예를 들면, 북한의 원래 계획은 총 2주간의 한미 키리졸브연습 기간에 개성공단을 폐쇄할 예정이었지만, 그렇게 오랜 공백기를 감당할 수 없다는 한국 기업인들의 주장을 경청한 북한 당국자들이 2주 기간 동안 몇 차례 통행을 허용했다고 박성철은 말하였다. 4월 21일 개성공단에서 가진 최근 남북대화에서 왜 근로자 숙소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는지 묻자, 박성철은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근로자 숙소는 북한의 “체면 문제”라서 북한 당국자들은 공식 회담 의제로 근로자 숙소 문제를 포함하지 않았다. 둘째, 근로자 숙소 건설은 이미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이라 북한 사람들은 이 문제가 추가로 필요한 논의의 “소재”라고 보지 않는다. 박성철은 만일 근로자 숙소 문제가 조만간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향후 개성공단 남북 회담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박성철에 의하면, 현재 합의문에서는 북한이 실제 건설을 맡아서 하고 한국 정부가 사업에 자금을 대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상주 근로자들에게 구내식당 형태로 음식을 제공할 책임을 지게 된다.

북한 근로자를 존중

6. (기밀) 박성철은 자신이 북한 정부의 옹호자가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오히려 그가 1990년대 초 북한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기독교 신자로서 북한 주민에 대한 걱정의 발로였다. 그의 말로는 북한이 “짐승”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뒤로 적어도 1년에 한 차례는 계속 평양에 갔다고 말했다. 박성철은 가장 최근에 2009년 4월 4일 북한이 미사일 발사 전날에 평양에서 돌아왔다. 그는 북한이 절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인상을 가지고 복귀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 관리의 신임을 얻은 이후에 1994년 평양에 처음으로 한국 공장을 개장해서 남성 정장을 만들었다. 그는 그 후 추가로 평양에 공장을 개장하고 개성시에 2곳 개성공단 입주 공장 1개를 개장하였다. 한국 정부는 애초에 인도네시아, 베트남, 과테말라, 중국 등지에 있는 그가 소유한 신원 공장이 너무 규모가 커서 개성공단에 적합한 중소 규모 형태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박성철은 “외국인” 근로자를 훈련시켜 본 경력이 소중한 자산이라고 한국 정부를 설득하였다.

7. (기밀) 그는 신원은 북한 노동자들과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형성했다고 강조하며 개성공단에서 신원을 위해 일하는 북한 노동자 대부분은 4년 동안 근속 했다고 했다. 남한 관리자들이 매일 아침 일렬로 서서 도착하는 노동자들에게 인사하며 악수를 나눈다; “교양 없는” 북한 사람들이 반응을 보기기까지 2년이 걸렸지만, 그 뒤로 북한 근로자들은 다소 마음을 열었다. 한 때는 북한 당국자가 박 회장 직원이 성의껏 훈련한 북한 관리자를 해고했지만, 개성공단에서 공장 운영을 그만 두겠다고 신원이 위협하자 해당 직원이 원대 복귀하기도 했다. 박성철은 개성공단의 북한 관리자들에게 자주 언급하듯이 개성공단을 폐쇄하면 북한 경제와 남북 관계가 최소한 20년은 후퇴할 거라고 믿고 있다.

8. (기밀) 박성철은 북한 당국자들로부터 교회 건축 허가를 받아 개성공단에 자신의 자금 300만 달러를 들여 2009년 6월 준공을 목표로 700명에 800명 남한 관리자들이 주말을 보낼 수 있는 3층 건물을 건설하고 있다; 북한 주민은 출입할 수 없다. 의류 공장 옆에 자리할 교회 건물은 공공연하게 교회 표식을 하지는 않겠지만, “모두 알게 될 거다.” 박성철은 비록 기독교 신앙심이 개성공단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만든 동기이긴 하지만, 그의 개성공단 공장 운영은 수익을 내기 위함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일부 개성공단 입주 업체의 수주가 최근 불거진 불확실성 때문에 줄었다는 점을 인정하되 자신의 회사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9. (기밀) 박성철은 개성공단 운영비 협상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길, 한국의 업체들은 50% 임금 인상을 어렵지 않게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임금 인상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개성공단 사업을 둘러싼 고도의 정치적 불확실성이다. 그로 인해 박성철은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개성공단 투자를 피하라고 말할 지경이다.

논평

10. (기밀) 개성공단은 정치적으로 힘든 한 해를 보내왔지만, 한국 업체의 초기 투자로 인해 계속 공단이 확장되면서 2008년 초 28,000명이던 노동력이 지금은 거의 4만 명까지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3월 중순 북한의 개성공단 통행 차단이 일시적으로 있었지만, 한국 자본이 겁쟁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 당시 남한 관리자 수백 명이 그들 의사에 반하여 개성공단에 발이 묶인 바 있다. 개성공단의 저임금 혜택을 보는 많은 공장으로선 단기적인 대안이 거의 없다. 개성공단 경영진들은 당시에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회동해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말라고 그에게 촉구하였다. 개성공단 경영자 가운데 박성철도 선도적으로 지속적인 개성공단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터라 한국 정부가 그가 믿고 있는 큰 그림을 볼 수 없다는 점에 실망한다.

11. (기밀) 한국 정부가 근로자 숙소 건설을 위해 큰 돈을 지출할 지가 남북 관계의 핵심 현안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입장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 없이는 숙소 건설과 같은 행보를 고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분 간은 남한이 숙소를 건설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본다. 우리는 박성철의 주장이 일부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사실상 개성의 모든 세대가 개성 공단 근로자이다; 그러나 더 많은 근로자가 필요한 점은 분명하다. 앞으로 개성공단이 확장되려면 개성 외곾 출신 근로자가 필요할 것이며, 그들은 근로자 숙소에서 기거해야만 한다. 기숙사 건설이 남한 기업 문화를 개성공단 외곽까지 전파할 거라는 점에서 박성철의 논지는 합당하다.

스티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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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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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SEOUL678.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0678 
 
SIPDIS 
 
E.O. 12958: DECL: 04/28/2019 
TAG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ECON [Economic Conditions], KN [Korea (North)], KS [Korea (South)] 
SUBJECT: KAESONG NEGOTIATIONS HINGE ON DORMITORIES, SAYS 
KIC'S LARGEST EMPLOYER 
 
REF: SEOUL 342 
 
Classified By: POL M/C Joseph Y. Yun. Reasons 1.4(b/d) 
 
¶1. (C) SUMMARY:  An important reason behind the DPRK's 
hostile attitude toward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is the ROKG refusal to build dormitories for additional 
workers.  The USG should encourage the ROKG to build the 
dormitories and allow the KIC to expand to over 100,000 
workers, because this is the best way to bring change to 
North Korea, said Park Sung-chul, Chairman and CEO of ShinWon 
garment corporation, which employs over 1,000 North Korean 
workers and has plans to expand to 3,000.  END SUMMARY. 
 
-------------- 
Let KIC Expand 
-------------- 
 
¶2. (C) ShinWon Corporation Chairman and CEO Park Sung-chul's 
main message at an April 27 meeting with Poloffs was that the 
USG should urge the ROKG to allow KIC expansion by building 
the workers' dormitories.  The nearly 40,000 North Korean 
workers at the KIC became "South Koreanized" after two years, 
beginning to think for themselves, Park had observed, and 
were learning not only the South Korean way of business but 
its way of life.  DPRK authorities were willing to let the 
KIC expand, even though they would be careful to limit the 
effects on North Korean workers.  The detention of the 
Hyundai Asan engineer was a warning about South Koreans 
mixing with North Koreans, Park believed.  In any case, if 
the KIC workforce expanded to 100,000 or 200,000 workers, 
drawn from all over North Korea, the effects would be 
impossible to contain -- much more effective than any 
previous or current dealings with North Korea, Park observed. 
 Park said that if dormitories are not built, KIC,s 
expansion will be capped at about 50,000 workers (available 
from the Kaesong City area) and firms will gradually 
withdraw. 
¶3. (C) Park had made this demarche to Minister of Unification 
Hyun In-taek last year, but Hyun maintained the 
denuclearization progress was needed first.  However, 
Chairman of the National Assembly,s Foreign Affairs 
Committee Park Jin apparently agreed that dormitories should 
be built. 
 
¶4. (C) Park said recent DPRK hostility could be traced to the 
dormitory issue.  He said DPRK officials mention the 
dormitory issue to his management staff at the KIC "every 
day."  The April 21 demand to renegotiate the financial terms 
of the six-year-old KIC, as well as the access restrictions 
put in place in December 2008 and the temporary cut off of 
KIC traffic in March all stemmed from DPRK dissatisfaction 
that President Lee Myung-bak's Administration had not honored 
this aspect of the October 2007 Inter-Korean Summit 
Agreement.  (Note:  After general agreement to expand the KIC 
at the October 2007 summit, the December 2008 first meeting 
of the "Joint Committee for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ended with a statement that included "The South 
and North have agreed to cooperate on the supply of the North 
Korean workforce necessary for the first stage development of 
the KIC and to discuss the construction of dormitories for 
North Korean workers commuting to the KIC..."  However, the 
October 2007 Summit and its follow-on meetings were 
politically controversial, with Lee and his advisors making 
clear that his Administration would not be bound by 
agreements made late in former President Roh Moo-hyun's term, 
Ref A. End Note.) 
 
¶5. (C) Park saw in recent DPRK behavior signs that the DPRK 
was determined to keep the KIC open.  If they had wanted to 
close it, they would have done so long ago, he said.  For 
example, the initial DPRK plan was to shut the KIC during the 
entire two-week Key Resolve joint U.S.-ROK military exercise, 
but Park said DPRK authorities had listened when ROK 
businesspeople had argued that factories could not handle 
such a long hiatus and allowed several crossings during the 
two week period.  When asked why the dormitory issue was not 
brought up in a recent North-South meeting at KIC on April 
21, Park gave two reasons: first, dormitories were a "face 
issue" for North Korea, so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would 
not include dormitories in the official meeting agenda, and 
second, since the dormitory construction was already agreed 
in the October 2007 Inter-Korean Summit, North Koreans saw 
 
the issue as a "baseline" not needing further discussion. 
Park predicted that if the dormitory concerns are not 
resolved soon, the issue would be discussed in future 
inter-Korean KIC meetings.  According to Park, the current 
agreement allowed the ROKG to finance the project while the 
DPRK was responsible for the actual construction, and the 
DPRK would be responsible for feeding the resident workers, 
cafeteria-style. 
 
-------------------------------- 
Respect for North Korean Workers 
-------------------------------- 
 
¶6. (C) Park made clear that he was not an apologist for the 
DPRK government.  Instead, he had begun traveling to North 
Korea in the early 1990s out of Christian concern for the 
North Korean people, who he said were living at the level of 
"animals," and had continued going to Pyongyang at least once 
each year since then.  Park most recently returned from 
Pyongyang on the day before the rocket launch, April 4, 2009, 
having gained the impression that North Korea would never 
give up its nuclear weapons.  After gaining the confidence of 
North Korean officials, he opened the first ROK factory in 
Pyongyang in 1994, to make men's suits.  He has since opened 
another factory in Pyongyang, two in Kaesong City and a 
factory within the KIC.  The ROKG initially said that his 
company, which has factories in Indonesia, Vietnam, Guatemala 
and China, was too big to fit the small-and-medium profile 
wanted for the KIC.  However, Park convinced the ROKG that 
his company's track record training "foreign" workers was 
valuable. 
 
¶7. (C) At KIC, his company emphasized establishing respectful 
relationships with North Korean workers, most of whom have 
worked for ShinWon for four years straight.  South Korean 
managers lined up to shake hands with and say hello to 
arriving workers each morning; it took two years for the 
"uncultured" North Koreans to begin responding, but they had 
since opened up somewhat.  At one point, DPRK authorities had 
removed the North Korean managers that Park's staff had 
carefully trained, but the crew was brought back when ShinWon 
threatened to close its KIC operations.  Park believed, and 
frequently told North Korean managers at KIC, that closing 
the KIC would set back North Korean economy and inter-Korean 
relations at least two decades. 
 
¶8. (C) Park also gained DPRK officials' permission to build a 
church and began constructing a three-story building with his 
own capital of USD 3 million for the 700 to 800 hundred South 
Korean managers who spend weekends at KIC (scheduled to open 
in July 2009); North Koreans will not be allowed inside.  The 
building, next to his garment factory, will not be overtly 
marked as a church, but "everyone will know."  Park noted 
that, although his Christian convictions motivated him to set 
up business in the KIC, his operations there were making a 
profit.  He acknowledged that some KIC companies' orders had 
declined because of recent uncertainty, but said his company 
was not affected. 
 
¶9. (C) Commenting on likely negotiations over the costs of 
operating at KIC, Park said that ROK companies could easily 
afford 50 percent wage increases.  However, a more serious 
concern, which led Park to tell potential investors to avoid 
the KIC for now, was the high level of political uncertainty 
surrounding the project. 
 
------- 
Comment 
------- 
 
¶10. (C) The KIC has had a rough year politically, but earlier 
investments by ROK companies have continued to expand the 
complex, increasing the workforce from 28,000 in early 2008 
to almost 40,000 now.  Even during the mid-March temporary 
cutoff of access to the KIC, with hundreds of South Korean 
managers stranded at the KIC against their will, there was no 
evidence that ROK capital was a coward.  Many of the firms 
taking advantage of low wages in KIC have few short-term 
alternatives.  KIC company CEOs met with Minister of 
Unification Hyun In-taek at that time to urge him not to let 
the KIC close.  Among KIC CEOs, Park is a leader in pushing 
for continued KIC expansion, and frustrated that the ROKG 
cannot see what he believes is the big picture. 
 
 
¶11.  (C) Whether the ROKG should expend a large amount of 
money to build dormitories is a key issue in inter-Korean 
relations.  Seoul's position so far is that South Korea 
cannot contemplate such a move in the absence of "normalized" 
relations with Pyongyang, and we see no likelihood that South 
Korea will do so anytime soon.  Still, we find some merit in 
Park's argument.  Currently, virtually every household in 
Kaesong has a worker employed by the KIC; yet, there is a 
clear need for more workers.  From now on, any expansion of 
KIC will need workers from outside the region, who have to be 
housed in dormitories.  Park has a valid point in that 
building these dormitories will spread South Korean business 
culture outside the Kaesong region. 
STEPHENS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3)
[Economic Conditions]
4)
[Korea (North)]
5)
[Korea (South)]
6)
POL M/C Joseph Y. 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