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현대그룹, 북한에 대한 인내와 관용 촉구, 김정일과의 회담 참고

문서번호 작 성 일 공 개 일 자 분 류 출 처
09SEOUL282 2009-02-26 01:57 2011-08-30 01:44 CONFIDENTIAL EMBASSY SEOUL
  • 대외비 SEOUL 000282
  • SIPDIS
  • E.O. 12958: 공표시기: 11/10/2018
  • 태그: PREL1), ECON 2), ETRD3), MARR4), PGOV 5), KS6), KN 7)
  • 제 목 : 현대그룹, 북한에 대한 인내와 관용 촉구, 김정일과의 회담 참고
  • 분류자: 케이슬린 스티픈스대사에 근거 : 1.4(b,d)
  • 번역자 : hegiene8)Hegiene Chrisy Kim 2011/09/25

요 약

1,(C) 요 약: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2월 13일 대사와의 오찬에서 남북 관계의 현 상황에 대한 그녀의 의견을 피력했다.
현회장은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지만, 남한측이 작년 금강산 관광 민간인 사살 사건에 대한 북한측의 공식사과를 강조하며 북한의 원조 요청에도 비료와 쌀 공급을 중단한 것이 장해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회장은 남북의 교착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 교류 증진의 길을 열기위한 차례로 금강산 관광 재개를 포함하여 한국이 먼저 화해 제스쳐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2.(C) 현대아산은 현대그룹의 계열사로 북한내 프로젝트에 책임이 있으며, 남북 관계 개선에 따라 개성공업공단의 확장계획을 수행할 용의가 있다고 현회장과 함께 오찬에 참석한 고위간부가 말했다. 하지만 그러는 한편 개성공단은 적자상태에 있다.
현회장은 그녀도 함께 참석했던 지난 정몽헌회장과 김정일의 간담회에서, 김정일이 가장 우려하고 있었던 것은 쿠데타 혹은 그를 향한 암살시도의 가능성이라고 전했다.
요약 끝.

현대-북한의 교류: 배경

3.(SBU) 현대의 북한과 공식 관계는 1988년, 현대그룹의 창업자이며 현회장의 시아버지인 정주영회장이 소와 기타 긴급 구호 물품들을 판문점을 넘어 북한으로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북한에서 출생한 정주영회장은 그야말로 “귀향”의 환대를 받았다.
또한 1998년, 김정일과의 장시간의 1:1회담 후 현대가 북한에 금강산 관광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허가를 받았고, 그로부터 1년 후인 1999년 현대아산이 설립되었다.
금강산은 2008년 7월 부터, 개성은 2008년 12월 부터 현재로서는 둘 다 관광이 중단되었지만, 현대아산은 여전히 한국의 금강산 휴양지와 개성시 관광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있으며, 국경선 근처 남북 공동 경제지구인 개성 공업 공단을 가동하고있다.

4.(SBU) 고 정주영회장은 1947년 작은 토건회사로서 현대를 시작하였고, 1965년 한국회사 최초 해외수주한(태국) 건설회사가 되었다. 현대건설은 1970년대엔 서울 부산 간 고속도로를 건설하였다. 현 대통령 이명박은 1977년부터 1988년까지 현대건설 CEO였으며, 1988년부터 1992년까지 현대건설 사장이었고, 한국의 가장 역동적인 경영 그룹으로 현대가 도드라지던 시기에 정주영회장의 핵심 측근이었다.
기업이 성장 하면서 현대그룹에서 건설, 기술, 자동자, 전자, 중공업 분야가 분리되어 나왔다. 다음 8개의 회사는 아직 현대그룹의 계열사로 남아있다: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엘리베이터, 현대택배, 현대UNI, 현대경제연구소, 현대투자신탁증권, 현대아산.

5.(SBU) 현정은회장은 남편 고 정몽헌회장 이후 현대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정몽헌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회장의 아들로, 회사의 회계장부에서 그 내용을 숨기고 김대중 행정부에서 북한으로 10억달러를 “불법송금”하도록 한 혐의로 2003년 6월 기소되자 같은 해 자살했다. 이 송금 스캔들은 역사적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행해졌다고 알려졌다.
현회장은, 2005년 7월 현대의 사업건으로 그리고 2007년 11월 전 대통령 노무현 대표단 멤버로 김정일을 두차례 만났다.

남북 교착상태: 서울이 그 열쇠를 가지고 있다

6.(C) 남북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한 현회장은, 비료와 쌀 원조 중단에 기인한 남측에 대한 “실망감”이 평양의 고충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현회장은 한국 정부가 북한이 원조 요청에 대해 “공식 요청”을 할 것을 고집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정부가 2008년 7월 11일, 이른아침에 돌아다니던 한국 관광객을 총격하여 사망하게 만든 사건 이후로 금강산 관광을 폐쇄하도록 결정한 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어떠한 화해로의 행보도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했다.

7.(C) 현회장은 남한이 더 강하고 부유하며 확실한 정당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서, 남북관계 회복에 대하여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관계 개선의 구체적인 조치로, 현회장은 한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와 2007년 10월의 정상회담 합의문의 논의를 위한 제의를 허가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8.(C) 참고: 김정일은 전 대통렬 노무현의 임기가 끝나기 두달 전 이었던 2007년 10월 정상회담 합의문에 서명했다. 그 합의문은 남한의 투자에 의한 경제자극책을 포함하고 있으며, 양국의 협력을 증진할 수 있는 폭넓은 내용이었다. 잠재 프로젝트들의 자세한 연대표와 예산이 실무진들에게 맡겨졌으며, 개성 공단과 공단 기숙사의 확장, 남북 철도선 복구, 북한에 대규모 경제적 지원이 그 항목 이었다. 대통령의 여당(열린우리당)에서 조차도 많은 의원들이 그 협의안에 사인하기를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서, 임기가 끝나기 단 몇달 전 노무현이 남긴 이 협의서를 계승하고 전개해 나갈지에 대한 어느 가능성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 후보자 이명박에게 2007 남북 공동 협의문을 면밀하게 보고했었던 전 통일부 장관 박재규는, 북한은 그 협의서의 내용 수정에 대해 일말의 여지도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 문서는 남북공동협의서 두 장 중 김정일이 서명을 끝낸 한 장 이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완벽한 형식”의 문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한 장은 2000년 6월의 남북 공동 선언서이다.
참고 마침.

북한의 속내는: 조용히 원조할 것

9.(C) 현회장은 북한이 남한의 고위관료들을 싫어하게 된것은 70년대 남한의 경제가 북한을 추월하던 때 부터라고 말했다. 북한이 느끼기엔 한국 관료들이 북한을 오만하고 업신여기는 태도로 대한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대북지원시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발표하는 비정부단체 NGO들도 싫어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북한은 원조 수혜자로서의 굴욕감이 없도록 “조용히” 그런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회장은, 북한사람들은 언제나 자존심이 세고 완고한 사람들이며, “체면 지키기”를 위해 도움을 청하느니 차라리 굶고 시달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남북프로젝트 중단의 결과

10.(SBU) 오찬에 참석한 다른 고위간부인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전 통일부차관 2001-2003), 하종선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도 현대아산은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으며 남북관계가 개선되기만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또 현대아산은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이 중지된 이후로 2009월 1월 까지의 손실이 7억6천4백만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개성 공단 공장들은 아직 운영중이고 더 많은 북한 근로자들의 숙소가 필요한 실정이나, 개성 공단 개발 계획이 무기한 중지된 실정이다.
(계획 1단계: 3.3 평방킬로미터에 450개 공장 설립, 10만 북한 근로자 채용. 1단계가 차질 없을 시, 2단계: 8.2평방킬로미터 추가 개발, 3단계: 18.1평방킬로미터에 걸쳐 골프코스를 포함한 아파트 단지 조성.)

11.(SBU) 조 사장은 개성공단의 인력구성 75%에 해당하는 여성 근로자들이 말하길, 그녀들이 개성공단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서 외모의 현저한 차이가 보인다고 했다고한다; 그들은 더 건강해지고 더 꾸미고 다녔고 그녀들이 일을 시작한 몇 달 후엔 핸드백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2008년 7월 금강산광관이 폐쇄된 후 부터는 정반대의 결과가 보인다고 했다; 근로자들은 다시 영양실조의 기미를 보이며, 한국식 옷차림에 대한 관심도 덜해졌다고 한다.

김정일과 북한 인민군

12.(C) 정몽헌 회장이 김정일과 장시간 1대1 회담했던 그 때, 현회장도 2005년과 2007년에 그를 대담했었는데, 당시 현회장이 목격한 김정일의 모습은 평상시와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비합리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했다.
정주영회장과 회담 시절 그는 “인민들이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털어놓고, 북한경제를 증진시키기 위한 자문을 구했으며, 어떻게 일본정부에서 세계2차대전으로 인한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방법을 물었다고 한다.

13.(C) 현회장에 따르면, 북한 인민군은 2004년 김정일 암살 미수 사건이라고 여겨지는 중국 국경 지대에서 기차 폭발 사건이 있고난 후, 김정일이 가장 신뢰하는 집단이 되었다고 한다. 그 폭발은 김위원장의 열차가 통과하기로 한 시간에서 정확히 30분전에 폭발했다. 김정일은 이 암살시도가 “거의 근접한” 시간에 폭발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 휴대폰 때문으로 생각했으며, 아마도 이 때문에 북한에서의 휴대폰 보급이 특히나 느린것으로 보인다.
현회장은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 하는것은 쿠데타와 암살시도라고 덧붙였다.

14.(C) 현회장은, 북한인민군이 1988년 현대의 금강산 프로젝트 계획에 반대했었다고 밝혔다. 개발 예정지역 사진을 찍을 경우, 북한의 안보가 위협을 받을 것 이라는 논쟁 때문이었다. 이 논란은 결국, 인공위성을 통한 항공사진 촬영이 이미 가능하다는 것으로 극복될 수 있었다고한다.

익숙한 남북관계

15.(C) 현회장과 그 측근들은 북한에 좀 더 융통성있게 접근하기 위해 미국의 지지를 받고자 현대 아산의 이름으로 미니 캠페인을 벌이는 것 처럼 보였다. 앞서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와의 1월 20일 회의에서 조건식 현대아산사장은, 현재 그가 청와대와 북한 사이의 “중개자”로서 갭을 좁히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는 양국 간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사장은 미해결난제인 금강산 총격사건에 대해서도, 사건발생 하루뒤인 2008년 7월 12일 북한군 고위인사가 금강산내 현대아산 사무실을 방문하여 유감을 표시하였으나 청와대가 요구해온 공식 사과는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2008년 현대아산의 새로운 사장으로 임명된 조건식 사장은, 또한 현회장의 말 처럼, 앞으로의 최선의 방법은 한국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동시에 북한과의 대화를 계속해나갈 것을 제안했다. 조사장은, 금강산 총격사건과 2007년 10월의 남북 합의서 문제는 개괄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며, 일반 항목들이 실행되어야 남한과 북한이 소소한 조건들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건식사장은 현인택 통일부 장관 임명에 대해 환영을 표했다. 현인택 장관은 이명박의 대북정책 입장이 거의 같은 사람이었다. 조사장은 새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남북문제를 “일괄교섭”의 대상으로 본다면서, 이는 새로운 장관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 북한은 불만

16.(C) 현회장과는 달리 조사장은 부대사에게 더 터놓고 북한 상대에 개인적인 불만을 표출했다.
개성공업공단에 대해서 조사장은, 현재 가동중인 공장 93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경 개발 제약이 새로운 회사의 시설 시공의 지연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잔류한 많은 관계자들이 기다리며 지켜보는 중 이라고 했다.
또한 개성공단의 북한 관료들이 그들의 회사에서 건설 근로자들을 12월에는 3000명에서 2700명으로 1월에 다시 2200명으로 감원해야 한다는 것에 “당혹스러우며 속상해” 한다고도 전했다. 조건식사장은 “북한은 단기집중 경제과정을 겪고있다.”고 하면서 북한에게 생소한 이러한 개발 제한은 인력난을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이목을 집중시키는 술책인듯한 북한의 적대감을 일축하며, 이러한 사업조건들은 불행스럽게도 시간낭비이며, 투자자들의 투자 열의를 꺽을 것이라고도 했다.**

논평

17.(C) 적대적인 북한과 수사적이며 침착하지만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한국정부사이에서, 현대아산은 그들 나름대로 남북관계가 나아질 때 까지는 고군분투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설득할 기회를 비관한 현대아산은, 미국을 통해서 하려한 것도 포함하여 한국에서도 로비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현대가 글로벌 회사로 거듭나도록 중심 역할을 했었던 이대통령에겐 현재 현대아산의 소망을 들어줄 여지는 없는것 같다. 그러나 어느누구도 현대에서 대북 개성, 금강산 관광 사업을 포기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 대북 사업은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거대한 수익을 창출할 사업이기 때문이다.
스티픈스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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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NY CCCCC ZZH
O 260157Z FEB 09
FM AMEMBASSY SEOUL
TO RUEHC/SECSTATE WASHDC IMMEDIATE 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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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PDIS 
 
E.O. 12958: DECL: 11/10/2018 
TAGS: PREL ECON ETRD MARR PGOV KS KN
SUBJECT: HYUNDAI GROUP SUGGESTS PATIENCE AND GENEROSITY 
TOWARD NORTH KOREA; NOTES FROM KIM JONG-IL MEETINGS 
 
REF: SEOUL 02270 
 
Classified By: Ambassador Kathleen Stephens. Reasons 1.4 (b) and (d). 
 
¶1.  (C) Summary: Hyundai Group Chairwoman Hyun Jeong-eun 
shared her views with the Ambassador on the current state of 
inter-Korean relations over lunch on February 13.  Hyun said 
North Korea wanted to improve relations with South Korea, but 
the South's halting of fertilizer and rice deliveries while 
insisting on an aid "request" from the North was a stumbling 
block, as was the South's insistence on a public apology for 
the shooting of a ROK tourist last year.  Hyun believed that 
the South should offer the first gesture to resolve the 
North-South standoff, which in turn would pave the way for 
improved inter-Korean exchanges, including reopening Kumgang 
Mountain tours. 
 
¶2.  (C) Hyundai Asan, an affiliate of Hyundai Group 
responsible for projects in North Korea, stood ready to carry 
out the expansion plan of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as soon as inter-Korean relations improved, according 
to Hyun's senior managers who also attended the lunch. 
Meanwhile, however, KIC was losing money.  Recalling her late 
husband's meetings with Kim Jong-il (KJI), as well as her own 
encounters, Hyun said KJI's top worry was the possibility of 
a coup or assassination attempt.  End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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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yundai-DPRK Connection: Back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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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BU) Hyundai's official relationship with North Korea 
began in 1988 when Chung Ju-young, founder of Hyundai and 
Chairwoman Hyun's late father-in-law, delivered cattle and 
other emergency supplies to North Korea over the 
Demilitarized Zone (DMZ).  Chung, who was born in North 
Korea, was welcomed with a "homecoming" celebration.  Also in 
1998, after Chung's lengthy one-on-one meetings with KJI, 
Hyundai received DPRK permission to organize tours to 
Mt. Kumgang.  A year later, in 1999, Hyundai Asan was 
established.  Hyundai Asan still manages South Korean tourism 
programs in Mt. Kumgang Resort and Kaesong City,  although 
both are currently suspended -- Mt. Kumgang since July 2008 
and Kaesong since December 2008.  Hyundai-Asan also operates 
the joint North-South economic zone on the border,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4. (SBU) Chung started Hyundai as a small construction 
company in 1947, and it became South Korea's first 
construction firm to work overseas (in Thailand) in 1965. 
In the 1970s, Hyundai Construction built the highway between 
Seoul and Busan.  ROK President Lee Myung-bak, as CEO of 
Hyundai Construction (1977-1988) and later as President of 
Hyundai Construction (1988-1992), was a key confidant of 
Chairman Chung during Hyundai's emergence as Korea's most 
dynamic business group.  As the company grew, its 
construction and engineering, vehicles, electronics and heavy 
industry businesses separated from Hyundai Group.  The 
following eight companies, however, still remain affiliated 
with Hyundai Group: Hyundai Merchant Marine, Hyundai 
Securities, Hyundai Elevator, Hyundai Logistics, Hyundai UNI, 
Hyundai Research Institute, Hyundai Investment Network, and 
Hyundai Asan. 
 
¶5. (SBU) Hyun Jeong-eun took over as chairwoman of Hyundai 
Group after her husband, Chung Mong-hun, son of Hyundai 
founder Chung Ju-young, committed suicide in 2003, following 
his indictment in June 2003 for his role in the 
"cash-for-summit" scandal in which he was charged with 
altering the company's accounting books to hide the secret 
transfer of nearly USD 100 million from the Kim Dae-jung 
administration to North Korea.  It is widely believed that 
the transferred fund was used to set up the historic 
north-South presidential summit in 2000.  Chairwoman Hyun has 
met Kim Jong-il twice -- on Hyundai business in July 2005 and 
as a member of former President Roh Moo-hyun's delegation in 
Novembe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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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South Impasse: Seoul Holds the 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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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 Stressing the need to improve North-South relations, 
Hyun stated that Pyongyang's grievances with the South 
centered on "unmet expectations" caused by postponed or 
cancelled fertilizer and rice assistance, and the ROKG's 
insistence that such aid required a North Korean "request." 
Moreover, the ROKG decision to close Mt. Kumgang resort after 
the July 11, 2008 shooting death of a wandering South Korean 
tourist at dawn had discouraged the North from initiating any 
reconciliatory steps, according to Hyun. 
 
¶7.  (C) Hyun believed that South Korea, as the stronger, 
wealthier and more confident party, should initiate gestures 
toward repairing inter-Korean relations.  As concrete steps 
toward improved relations, Hyun suggested that the ROKG allow 
Mt. Kumgang tours to resume and then offer to discuss the 
October 2007 Summit Agreement. 
 
¶8.  (C) NOTE: Kim Jong-il signed the October 2007 Agreement 
with former President Roh Moo-hyun two months before the end 
of Roh's term.  The Agreement was a broad outline of ways in 
which the two Koreas could increase cooperation, including 
through economic measures funded by the South.  Details of 
potential projects, timelines and budgets -- including the 
expansion of the KIC and its dormitories, restoration of 
inter-Korean rail, and large-scale economic assistance to 
North Korea -- were left to a working group.  Many, even 
within Roh's own party, opposed signing the Agreement, 
because there was no guarantee that the incoming ROKG 
administration could, or would, deliver on an agreement made 
only a few months before the end of Roh's term.  Former 
Unification Minister Park Jae-kyu, who had advised 
then-Presidential candidate Lee Myung-bak to carefully review 
the October 2007 Agreement, has told us that the DPRK has no 
flexibility to modify the text because it was one of only two 
inter-Korean documents signed by Kim Jong-il himself and 
therefore considered "perfect in form" by the DPRK.  The 
other document was the June 2000 Joint North-South 
Declaration.  END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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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North Korean Thinking: Give Quie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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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 Hyun observed that North Korean dislike for the ROKG 
officials escalated in the 70s, when South Korea's economy 
overtook that of the North.  North Koreans felt that ROK 
officials treated North Koreans with arrogance and disdain. 
The DPRK also disliked NGOs who held press events to announce 
assistance to North Korea, because North Koreans believed 
such exchanges should be done "quietly," without humiliating 
the beneficiaries.  North Koreans had always been proud and 
stubborn people who in order to "save face" would rather 
suffer and starve than ask for help, Hyun s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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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equences of Halting Inter-Korean Pro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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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SBU) The other Hyundai officials at lunch, Hyundai Asan 
President and CEO Cho Jun-shik (who previously served as Vice 
Minister of Unification 2001-2003) and Hyundai Group 
Strategic Planning and Development Office President Ha 
Jong-seon, stated that Hyundai Asan was ready to move forward 
if and when inter-Korean relations improved.  Since Mt. 
Kumgang tourism was halted in July 2008, Hyundai Asan had 
lost revenues of USD 76.4 million through January 2009.  The 
KIC factories were still operating, but more DPRK workers' 
dormitories needed to be built.  While Phase I of KIC 
(eventually to house 450 companies, employing 100,000 DPRK 
workers, on 3.3 sq km) would continue, barring further 
problems, the company's ambitious Phase II (another 8.2 sq 
km) and Phase III (18.1 sq km with apartments and golf 
courses) were on hold indefinitely. 
 
¶11.  (SBU) Commenting on KIC's female workers, who made up 
over 75 percent of work force, Cho said the difference in 
their physical appearance was remarkable once they started 
working at the KIC factories; they looked healthier, wore 
make-up, and carried handbags within a few months of their 
arrival.  Since the Mt. Kumgang resort had been closed in 
July 2008, the opposite effect was taking place; employees 
were again showing signs of poor nutrition, much less 
exhibiting an interest in South Korean fash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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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Jong-il and the K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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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 Recalling her late husband's comments from his 
lengthy one-on-one meetings with KJI, as well as her own 
encounters with him in 2005 and 2007, Hyun observed that her 
experiences with KJI were somewhat different than the usual 
caricatures.  He was not an unreasonable man.  In his early 
meetings with Hyundai's founder, KJI had admitted that 
"people needed to eat" and asked about ways to improve North 
Korea's economy.  KJI had also solicited ideas on how to 
extract more compensation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for 
World War II. 
 
¶13.  (C) According to Hyun, the DPRK's Korean People's Army 
became KJI's most trusted group after the 2004 train 
explosion on the Chinese border, an incident that was 
believed to be a failed assassination attempt on KJI.  An 
explosive went off on the rail road track approximately 30 
minutes before a train carrying KJI was scheduled to pass. 
KJI believed that cell phones had made it possible for the 
assassination attempt to come "so close," which might explain 
North Korea's particularly slow adoption of cell phones. 
Hyun said coup and assassination attempts were KJI's greatest 
worries. 
 
¶14.  (C) Hyun observed that the North Korean People's Army 
had originally opposed Hyundai's plans for the Mt. Kumgang 
project in 1988, arguing that by taking pictures of desired 
areas for development Hyundai would threaten the North's 
security.  The argument that finally overcame the Army's 
objection was that the aerial pictures were already available 
by satellite, Hyun s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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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amiliar Tune on Inter-Korean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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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C) The comments by Chairwoman Hyun and her colleagues 
appear to be part of an ongoing Hyundai Asan mini-campaign to 
win U.S. support for a more flexible approach to North Korea. 
 In an earlier meeting with the DCM on January 20, Hyundai 
Asan President Cho Kun-Shik said that he was now playing the 
"mediator" role between the Blue House and North Korea, in an 
attempt to narrow the gap, but he did not foresee a 
breakthrough on dialogue between the two Koreas.  On the 
unresolved Mt. Kumgang shooting, Cho shared that a 
high-ranking North Korean military official had visited 
Hyundai Asan's office in the Mt. Kumgang resort the day after 
the July 11 shooting to express regret, but it would not be 
possible for North Korea to make a public apology as the Blue 
House had demanded.  Cho, who came into his new position as 
Hyundai Asan President in August 2008, also had suggested, as 
Chairwoman Hyun did, that the best way forward would be for 
the ROKG to re-open Mt. Kumgang to tourism and pursue a 
dialogue with the North at the same time.  The Mt. Kumgang 
incident, as well as the October 2007 inter-Korean agreement, 
should be dealt with in broad, general terms when moving 
forward, he said, so that the two Koreas did not get 
entangled in details.  Cho had also welcomed the announcement 
of the new MOU Minister, Hyun In-taek, whom he viewed as 
having close ties to LMB.  Cho believed the new Unification 
Minister saw the denuclearization issue and inter-Korean 
issue as a "package deal" and this equipped the new Minister 
with better tools to improve inter-Korean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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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Frustration with North Korea a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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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 Unlike Chairwoman Hyun, however, Cho had more openly 
expressed to the DCM his personal dissatisfaction in dealing 
with the North.  Commenting on the KIC, Cho said that while 
the 93 existing companies continued to operate, border 
crossing restrictions had slowed construction of facilities 
for new companies, many of whom remained in wait-and-see 
mode.  Cho also noted that the DPRK authorities at KIC were 
"embarrassed and upset" at his company's decision to reduce 
the number of North Korean construction workers at KIC from 
3,000 to 2,700 in December and then to 2,200 in January. 
"They got a crash course in economics," Cho said, observing 
that it had never occurred to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that restricting access to KIC might affect the need for 
workers.  While he dismissed hostile North Korean rhetoric as 
an attention-getting ploy, he said it was unfortunate in 
business terms because it wasted time and discouraged 
inves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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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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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C) Caught between belligerent North Korean rhetoric and 
a calm but firm ROKG response, Hyundai Asan is on its own in 
trying to keep the company afloat until inter-Korean 
relations improve.  Seeing no chance of persuading the North, 
Hyundai Asan has turned to lobbying the South, including 
trying to do so through the U.S.  So far, however, President 
Lee, who was a major figure in Hyundai's emergence as a 
global company, has not accommodated their wishes.  Still, 
nobody expects Hyundai to give up on North Korea, because its 
businesses, whether in Kaesong or Kumgang, will be enormous 
money-makers if North-South relations improve. 
STEPHENS
1)
, 3)
, 4)
[?]
2)
[Economic Conditions]
5)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6)
[Korea (South)]
7)
[Korea (North)]
8)
트위터 사용자명, 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