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노반 동아시아태평양 수석부차관보, 탈북자 단체 대표들과 회동

문서번호 생성일 분류 출처 태그
09SEOUL1906 2009-12-03 08:48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 기 밀 SEOUL 001906
  • 국방부망 배포1)
  •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12/03/2029
  • 태그: PREL2), PGOV3), PINR4), PHUM5), KPAO6), MNUC7), SOCI8), ECON9), KN10), KS11)
  • 제 목: 도너반 동아시아태평양 수석부차관보, 탈북자 단체 대표들과 회동
  • 참조: SEOUL 1896
  • 분류자: 도노반 동아태 수석부차관보12). 근거 1.4 (b/d).
  •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3/04/30 11:14

요점

1. (기밀) 12월 2일 만찬 석상에서 가진 광범위한 논의에서, 5명의 주요 탈북자 사회 대표들은 평범한 북한 주민이 남한의 “불법”매체를 읽고 청취한다고 조 도노반 수석부차관보에게 말하였다. 도너반과 함께한 대화 상대역들은 고용차별에서부터 당황스럽기까지 한 너무 과다한 선택거리까지 남한 생활 적응의 어려움 점을 언급하였다. 그들은 북한의 갑작스러운 화폐 개혁은 북한의 다양한 비공식 시장에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을 처벌해서 현금을 착취하는 거라고 규정하였다. 참석한 모든 탈북자 대부분이 통일 이후에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고 주장하였는데, 그들은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통일이 급속히 올 거라고 모두가 믿고 있었다. 요점 끝.

탈북자 사회의 주요 지도자

2. (기밀) 조 도너반 수석부차관보는 12월 2일 만찬을 위해 서울 소재 탈북자 사회 5명의 지도자들과 회동하였다. 초대 손님은 다음과 같다: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김성철 북한개혁방송 대표;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언론인;
김영일 성공적인통일을만들어가는사람들 대표; 그리고
최진이 임진강 잡지 언론인/시인.

청취자가 있기는 한가?

3. (기밀) 김성철과 김성민은 북한 안에서 사람들이 남한 탈북자 사회가 송출하는 라디오를 듣고 있다고 도너반 수석부차관보에게 말하였다. 두 사람은 중국 영변자치구에 최근 도착한 200명의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최근 미국 방송위원회 조사를 언급하였다; 대략 35퍼센트가 자유북한라디오를 청취하는 걸로 보고하였다. 북한 주민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해서 자신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전화를 걸어 남한으로 가는 방법과 북한에서 남한으로 보내는 인간 밀수 상인들에게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지 등의 최신 정보 제공을 요청하는 사례가 있다고 양 김씨는 말하였다. 양 김씨는 현재 3주 안으로 누군가를 서울에 도착하게 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략 미화 8,500 달러라고 두 김씨는 주장하였다; 약 미화 2,600 달러 정도면 대략 6개월 안으로 탈북자 한 명을 태국을 경유해 서울로 밀입국할 수 있다.

4. (기밀) 최진이는 비록 유통되는 부수는 적지만, 임진강 잡지도 읽히고 있으며―최소한 검열관―대략 북한의 100개 주요 작업단위에서 읽힌다. 임진강은 표시가 없는 봉투에 담아 작업단위 별로 우편으로 보내며, 그곳의 최소 2명의 검열관은 내용을 보게 되어 있다. 최진이는 최소한 검역관들이 가끔 기사를 복사하거나 팩스로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보낸다고 믿고 있다. 그녀는 잡지에 실린 중국 지역 공산당 간부가 여성탈북자들을 보호하고 심지어 공식 마을 주부연합회를 이끌게 허락했다는 중국의 한 마을 이야기에 대해 독자의 많은 반응을 받은 바 있다고 말하였다.

국정원이 위협?

5. (기밀) 북한 정부가 손길을 뻗어 위협하고 있는지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모든 참가자는 북한의 간접적인 압력을 받아왔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북한 정권이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며, 탈북자 사회 지도자가 리스트에 등재되어 있다고 농담조로 말하였다. 김성민은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정부 시절 남한 국정원으로부터 가장 큰 압력을 받았다고 김성민은 말하였다. 김성민은 노무현 정부는 북한을 자극하는 어떤 행위에도 알레르기 반응이었다며, 자유북한방송과 같은 조직에는 국정원이 “하나의 적”이였다고 설명하였다. 김성민은 이명박 정부에서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덜 공세적이었다며, “국정원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고” 김성민은 말하였다.

남한 생활 적응이란 도전

6. (기밀) 1994년 한국으로 탈출했고, 남한 사람과 결혼한 김성철은 탈북자는 한국 사회에 통합되기에는 여러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도너반 수석부차관보에게 말하였다. 그중에서도 고용 차별을 들며, 많은 탈북자들은 한국 사회의 “배타성”과 계급 차이를 분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하였다. 김형광은 많은 일상적인 도전은 선택이라고 강조하였다. 많은 탈북자들이 주거는 어디서 해야할 지, 식사는 무엇을 먹어야 할지 까지 처음에 너무나도 선택할 게 많아 어쩔 줄을 몰랐다고 말하였다. 그는 대개 “북한의 보통 주민은 선택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김성민에게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남한사람들의 북한 동포가 처한 상황에 대해 그냥 무관심하단 점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남한 사람들보다 미국사람이 우리에 대해 더 관심을 쓰고 있다.”라며, “노무현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미국정부는 우리에게 많은 지원을 했다.”라고 덧붙였다.13)

화폐 대란: 시장에 큰 타격…

7. (기밀) 김흥광은 북한의 현 화폐 교체라는 갑작스러운 결정에 대해 평가하길(참조전문), 자신의 북한 연락선에 의하면, 사람들은 화폐 개혁 행보로 “혼란에 빠졌다.” 마지막으로 통화 개혁이 있었던 1992년에는 식량배급제는 작동하고 있었고, “가족금고”에 많은 돈이 없었다. 지금은 그와는 정반대다: 식량배급제는 수년간 작동하지 않는데다, 사람들은 수중에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김흥광은 회색 시장에서 잘나가던 상인들이 최대 피해자라고 김흥광은 말하였다; 당국자들은 공포와 질투심에 뇌동하여 “앙갚음을 했다.” 김영일 성공적인통일을만들어가는사람들 대표는 단순히 일반 국민의 돈을 더 많이 쥐어짜기 위해서 현금이 말라버린 북한 정권이 화폐를 교체했다고 단언하였다. 이번 단기적 조치의 결과로 현재 북한 통화는 가치가 없으며, 사람들은 지금 외국 화폐로만 저축하고 있을 거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그리고 원산은 번창

8. (기밀) 북한의 연락선을 언급하면서, 김흥광은 이번 화폐 위기 동안에 사람들로부터 돈을 뜯어내 아마도 원산을 꾸미는 데 사용될 거로 추정하였다. 그는 김정일의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이 원산에서 출생했기에, 그가 정권을 잡기 이전에 “훌륭한 마을”이 될 필요가 있다. 김흥광은 평양풍의 대단위 개조 작업에 들어갔으며,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은 원산에서 시골로 쫒겨나고 원산에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담보하기 위해 새 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고 말하였다.

통일: 김정일 없이는, 정권도 없다

9. (기밀) 마무리 시간에 최진이를 제외한 모든 만찬 참석자들은 통일 이후에 북한으로 돌아갈 거라고 말하였다; 최진이는 자신이 남북한 사이를 잇는 “다리”라고 생각한다며, 남한에 남을 거라고 말하였다. 놀랍게도, 모든 탈북자 사회 지도자들은 생전에 통일이 온다고 믿고 있으며,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에, 북한정권은 김정일과 함께 사망할 거라는 데 견해를 같이하였다. 김성철은 김일성이 1994년에 사망했을 당시에, 북한 정권은 “김정일이 낙점된 상태였다. 이번에는 자리에 들어설 준비된 김정일이 없다.”라고 설명하였다.
스티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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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SEOUL1906.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1906 
 
SIPDIS 
 
E.O. 12958: DECL: 12/03/2029 
TAG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INR [Intelligence], PHUM [Human Rights], KPAO [Public Affairs Office], MNUC [Military Nuclear Applications], SOCI [Social Conditions], ECON [Economic Conditions], KN [Korea (North)], KS [Korea (South)] 
SUBJECT: PDAS DONOVAN'S MEETING WITH DPRK REFUGEE COMMUNITY 
LEADERS 
 
REF: SEOUL 1896 
 
Classified By: EAP PDAS Joe Donovan.  Reasons 1.4 (b/d). 
 
Summary 
------- 
 
¶1. (C) During a wide-ranging discussion over dinner on 
December 2, five prominent leaders from the North Korean 
refugee community told EAP PDAS Joe Donovan that ordinary 
people in the DPRK are listening to and reading "illegal" 
media from the South.  Donovan's interlocutors cited a range 
of difficulties in adjusting to life in the South, from job 
discrimination to being overwhelmed by the choices available 
to consumers.  They characterized the North's sudden currency 
replacement as a cash-grab by the regime intended to punish 
people who profited in the country's numerous unofficial 
markets.  Nearly all of the participants claimed they would 
return home following reunification -- which they unanimously 
believed would occur quickly following Kim Jong-il's death. 
End summary. 
 
Key Leaders in the North Korean Refugee Community 
--------------------------------------------- ---- 
 
¶2. (C) EAP PDAS Joe Donovan met for dinner on December 2 with 
five Seoul-based leaders of the North Korean refugee 
community.  The guests were: 
 
-- Kim Heung-kwan, President of "North Korea Intellectual's 
Solidarity"; 
 
-- Kim Seung-chol, President of North Korea Reform Radio; 
 
-- Kim Seung-min, a journalist with Free North Korea Radio; 
 
-- Kim Young-il, President of "People for Successful Corean 
Reunification" (aka SCORE); and, 
 
-- Choi Jin-i, a journalist/poet from Imjingang magazine. 
 
Is Anybody Listening? 
--------------------- 
 
¶3. (C) Kim Seung-chol and Kim Seung-min told PDAS Donovan 
that people inside North Korea were listening to radio 
broadcasts from the refugee community in the South.  They 
cited a recent U.S. Broadcasting Board of Governors survey of 
200 recently-arrived North Korean refugees in China's Yanbian 
Autonomous Prefecture; approximately 35 percent reported 
having listened to Free North Korea Radio.  Anecdotally, both 
Kims said that people in the DPRK used mobile phones to call 
in to their programs and, for example, ask for advice on how 
to get to South Korea and to provide the latest on how much 
human traffickers charge to get someone from the DPRK to the 
ROK.  The two Kims asserted that the current cost was 
approximately 8,500 USD to get someone to Seoul via plane 
from China in about three weeks; for about 2,600 USD, a 
defector could be smuggled to Seoul via Thailand in about six 
months. 
 
¶4. (C) Choi Jin-i related that, although it has a small 
circulation, Imjingang Magazine was being read -- at least by 
censors -- at approximately 100 major work units in North 
Korea.  Imjingang mails its magazine in unmarked envelopes to 
the work units, where at least two censors are required to 
look at it.  Choi believes that, at a minimum, the censors 
sometimes copy or fax articles to their friends and 
relatives.  She said the magazine had, for example, received 
a lot of feedback about a story on a Chinese village where 
the local Communist Party chief protected female North Korean 
refugees and even permitted a refugee to lead the official 
village housewives' association. 
 
Threats from the...NIS? 
----------------------- 
 
¶5. (C) In response to a question about whether the North 
Korean government had reached out to threaten them, the 
participants all said that they had been pressured indirectly 
by the DPRK.  They joked that the regime had a "black list" 
and that each of the community leaders was on it.  Kim 
Seung-min said that, ironically, the strongest pressure and 
intimidation had come from the South Korean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NIS) during the Roh Moo-hyun era.  Kim 
explained that the Roh administration was allergic to doing 
anything that provoked the North, so for organizations like 
Free North Korea Radio the NIS was "an enemy."  Kim said the 
NIS had been less aggressive during the Lee Myung-bak 
administration; at least now, Kim said, "the NIS is not our 
enemy." 
 
Challenges in Adjusting to Life in South Korea 
--------------------------------------------- -- 
 
¶6. (C) Kim Seung-chol, who fled to the ROK in 1994 and is 
married to a South Korean, told PDAS Donovan that North 
Korean refugees faced a number of serious challenges in 
integrating into ROK society.  Foremost among them was job 
discrimination, he said, explaining that many refugees 
resented the society's "exclusiveness" and class differences. 
 Kim Heung-kwang highlighted a more mundane challenge: 
choices.  He said many refugees were initially overwhelmed by 
the number of choices they had to make, ranging from where to 
live to what to have for dinner.  He observed that, generally 
speaking, "ordinary people in North Korea are not permitted 
to make choices."  For Kim Seung-min, one of the greatest 
challenges to overcome was simply the indifference of South 
Koreans to the plight of their Northern kin.  "I think people 
in the United States care more about us than people in the 
South," he said, adding that "the U.S. Government has done a 
lot to support us, while Roh Moo-hyun did nothing for us." 
 
Currency Chaos:  A Big Blow to Markets... 
----------------------------------------- 
 
¶7. (C) Commenting on North Korea's reported sudden decision 
to replace its currency (reftel), Kim Heung-kwan said that, 
according to his contacts in the North, people remained 
"confused" about the move.  In 1992, the last time the 
currency was replaced, the public distribution system (PDS) 
was functioning and people didn't have a lot of cash stored 
"in the family chest."  Now, he said, the opposite was true: 
the PDS hadn't functioned for years and people kept a lot of 
cash on hand.  Kim said that traders who did well in the gray 
market economy were the big losers; the authorities, driven 
by a mix of fear and jealousy, "have evened things up." 
SCORE's Kim Young-il asserted that the cash-strapped DPRK 
regime replaced the currency simply to squeeze more money out 
of ordinary people.  The result of this short-term measure, 
he and Kim Heung-kwan reasoned, was that North Korean 
currency was now worthless; people would now keep their 
savings in foreign currency alone, they said. 
 
...And a Boon for Wonsan? 
------------------------- 
 
¶8. (C) Kim Heung-kwan, citing contacts in the DPRK, 
speculated that the cash taken from people during this 
currency crisis might be used to beautify Wonsan.  He 
explained that Kim Jong-il's alleged successor, Kim Jong-eun, 
was born in the city, so it needs to become a "great village" 
before he takes power.  Kim Heung-kwan said the city was in 
the process of a major Pyongyang-esque makeover, with 
"mentally challenged" people being deported from Wonsan into 
the countryside and new power plants being built in the area 
to ensure it has a reliable supply of electricity. 
 
Unification: No Kim Jong-il, No Regime 
-------------------------------------- 
 
¶9. (C) In closing, all the dinner participants except Choi 
Jin-i said they would return to the North following 
reunification; Choi said she would remain in the South, where 
she viewed herself as a "bridge" between the two societies. 
Surprisingly, all of the community leaders believed 
unification would occur during their lifetimes, agreeing that 
once Kim Jong-il died, the regime would die with him.  Kim 
Seung-cheol explained that when Kim Il-sung died in 1994, the 
regime had "Kim Jong-il to fall back on.  This time, there is 
no Kim Jong-il ready to step in." 
STEPHENS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3)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4)
[Intelligence]
5)
[Human Rights]
6)
[Public Affairs Office]
7)
[Military Nuclear Applications]
8)
[Social Conditions]
9)
[Economic Conditions]
10)
[Korea (North)]
11)
[Korea (South)]
12)
EAP PDAS Joe Donovan
13)
What he’s saying about is not “jingoism”, but “egoism”. That’s who he is, same kind of persons are out there everywhere. They don’t care about whether they’re just propaganda machine or another. They just want what they want, easy life with the money and 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