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한국계 미국 학자 박한식, ‘자문’ 제공 위해 평양행

문서번호 생성일 배포일 분류 출처 태그
09SEOUL1059 2009-07-06 07:14 2011-08-30 01:44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 기 밀 SEOUL 001059
  • 국방부망 배포1)
  •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07/06/2019
  • 태그: PROP2), PREL3), KN4), KS5)
  • 제 목: 한국계 미국 학자 박한식, ‘자문’ 제공 위해 평양행
  • 분류자: 정치 공사 참사관 조셉 윤6). 근거 1.4(b/d)
  •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10/14 21:55

요점

1. (기밀) 요점: 6월 1일 조지아 대학 박한식 교수는 곧 있을 평양 방문에 대해 우리에게 브리핑하기 위해 정치 공사 참사관과 회동하였다. 박한식은 북한을 자주 방문하였고, 북한의 지도자들과 조선아태평화위원회, 그리고 외무성 인사들과 깊은 인연이 있다. 박한식은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 직접 관계하려는 모습이 없어 북한 지도부는 실망했다고 이야기를 전달하였다. 그들은 북한의 6자 회담 복귀를 오바마 행정부가 고집하는데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박한식은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은 거의 또는 전혀 없다고 봤다; 완전히 새로운 다자간 회담 혹은 미합중국과의 단독 양자 회담의 형태가 돼야 한다고 했다. 박한식은 현재 북한은 군에 의한, 군을 위한 의제로 운영되고 있어, 그들의 계획에서 탈피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박한식은 속임수 게임을 펼치고 있거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의 한계를 실험하는 게 아니라고 믿고 있지만, 그들의 행보는 북한 내부적 혼란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북한의 지도부는 금지된 행로에 들어서 있으며 끝을 볼 의향이다. 박한식은 두 명의 구금된 미국 언론인과의 접견을 모색할 거라고도 말했다; 두 기자를 붙잡고 있어봐야 좋을 게 없다고 북한 당국자에게 말할 예정이다. 북한은 현 상황을 해결할 방책을 찾고 있지만, 반드시 “체면” 치레를 해야만 한다. 박한식은 평양에서 귀환하는 즉시 7월 10일이나 그즈음에 대사관에 들리겠다고 말하였다. 요점 끝.

박 교수의 친분관계

2. (기밀) 북한 전문가인 박한식은 조지아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으며, 세계문제연구소장으로 또한 봉직하고 있다. 북한 관련 정평이 자자한 권위자로서, 북한의 많은 지도자와 간부들과 친분 관계를 가진 박한식은 자신의 곧 있을 7월 4~8일 평양 방문에서 제기할 현안에 관해서 우리에게 브리핑차 정치 공사 참사관을 접촉하였다. 박한식은 자신이 40차례 방북해왔으며, 북한 지도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북한의 외무성과 조선아태평화위원회 인사들과의 깊고 오랜 인연이 있다. 박한식은 한성렬과7) 리근8), 그리고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친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특정하였다. 그는 조선아태평화위원회 백기분과 리전표9) 역시 긴밀한 연락선으로 들었다. 박한식은 리전표가 특히 김정일을 필두로 평양의 지도부와 연줄이 매우 좋다. 박한식은 서울에서 출발해 6월 2일 베이징에 가서 평양행 비자를 획득할 거라면서, 6월 4일에 베이징을 출발해 7월 8일까지 북한에 체재한 뒤에 중국 당국자들과 회동하기 위해 항공기편으로 선양에 갈 거라고 말하였다. 6월 9일 박한식은 서울에 복귀해서 대사관 당국자들과의 회동을 요청할 계획이다.

정세와 군사력

3. (기밀) 박한식은 미합중국과 한국, 그리고 북한 간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하고 있는데, 아마도 근래 들어 최악이라고 말하였다. 새 미국 행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준비할 당시 왜 북한정부가 대화를 무시했느냐 질문을 하자, 해당 결정은 북한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며, 당시 북한 내 결정은 군에 의해, 또한 군을 위해 내려졌다. 박인국은 평양 분위기는 새 미 행정부가 북한 지도부와 직접 나서 대화를 개시할 거로 희망적이었지만, 미국정부는 북한과 관계에 나서지 않았으며, 북한에 대해선 수개월간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러나 북한이 새 미국 행정부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는 심각한 실수를 했고, 미사일 발사와 2차 핵 실험의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북한군은 꽤 오래전에 예고된 일정을 단순히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박한식은 북한군이 사고를 재고의 여지가 없는 일방 통행식 사고로써 규정하였다. 박의 평가 해보면, 다수의 북한 정부의 행동은 현재 북한 국내 상황에 의해 좌우되었다. 박한식은 북한이 미국정부에 미끼를 던지거나, 한국을 떠보려는 시도로 속임수 게임을 펼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북한은 그러한 운신의 폭을 갖고 있지 않으며, 실수할 여유가 없다. 북한의 모든 행동은 “군이 고안한 각본”이며, 지도부는 그것을 수행하고 있다. 평양 지도부는 비평적 분석 그 이상의 역량이 있으며,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지휘 계통을 통해 표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박한식은 북한 정권은 “가미가제” 사고방식을 갖고있다고 규정하기도 했다.

승계, 결손, 김일성의 유물

4. (기밀) 승계 문제에 관하여, 김정은이 계승자로 낙점받은 이유는 다른 두 아들은 너무 알려졌고, “문제투성이”이다. 박한식이 말한 바로는 승계 과정이 소란스럽지 않을 거라며, 김정은이 그리 많은 권력을 보유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김정은의 입지는 대게 상징적이 될 것이며, 그는 평양에 다른 이들의 통제를 받을 거다; 북한은 한층 집단지도체제로 나아갈 거라고 했다.

5. (기밀) 북한의 진정한 지도자로 김일성이 남아 있는 이유는 북한이 여전히 그의 정책과 사상, 그리고 글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박한식은 북한정권을 신권정치라고 부르며 공식적인 문서는 반드시 김일성의 생일을 기준으로 연도를 따져야만 한다. 예를 들면, 2009년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에서 3년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주체 마이너스 3년으로 간주한다.

미국시민권자인 기자 둘과 6자 회담

6. (기밀) 박한식은 미국시민권자 기자 둘의 재판이 끝났기 때문에, 상황이 더는 북한군의 지배하에 있지 않다; 다른 이들이 협상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제 재판이 끝난 만큼,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북한 방문에서 확인하게 된다. 북한 지도부는 딜레마를 벗어날 체면치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7. (기밀) 박한식은 6자 회담 관련해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지 않을 거로 믿었다. 북한이 협상의 부분 집합이 된다든지, 보상 조치나 국제적 이미지 고양 등에 넘어가길 절대 원하지 않을뿐더러, 약속받은 혜택이 현실화되지 않았기에 북한은 못마땅하다는 태도다. 6자 회담 중에, 북한 정부는 꽤 고립되고, 또한 5자 당사국에 의해 집단적 공격을 받는다는 느낌도 받았다. 아마도 “다자간 대화”가 가능하겠지만, 반드시 새로운 구조와 당사국의 새로운 참가자들을 갖춰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북한 사람들은 미합중국과의 양자 대화를 원하였다.

8. (기밀) 논평: 박 교수는 북한 당국자들과 오랜 접촉의 역사가 있는데, 놀랄 일도 아닌 것이 박한식은 종종 분석가보다는 북한에 대한 옹호자에 더 가까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북한 사람들의 생각과 동기를 이해하는데 대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으로 우리가 바라건대, 박 교수가 조지아 대학에서 과거 40년간 교수 생활을 지내면서 섭렵한 한층 폭넓고 현실적인 시각을 전달할 수 있길 우리는 희망한다.
스티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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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1059 
 
SIPDIS 
 
E.O. 12958: DECL: 07/06/2019 
TAGS: PROP [Propaganda and Psychological Operation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KN [Korea (North)], KS [Korea (South)] 
SUBJECT: KOREAN-AMERICAN ACADEMIC HEADS TO PYONGYANG TO 
GIVE "COUNSEL" 
 
Classified By: POL M/C Joseph Y. Yun. Reasons 1.4(b/d) 
 
¶1.  (C) Summary: On July 1, Professor Han S. Park from the 
University of Georgia met with Pol M/C to brief us on his 
upcoming visit to Pyongyang.  Park said that he had made 
frequent trips to the DPRK and had deep connections with its 
leaders and members of the Asia Pacific Peace Committee and 
the Foreign Ministry.  Park relayed that the DPRK leadership 
had been disappointed by the Obama administration's lack of 
direct engagement.  They also found the administration's 
insistence on North Korea's return to the Six-Party Talks 
(6PT) to be unacceptable.  Park's view was that there was 
little or no likelihood for the DPRK to return to the 6PT; 
there had to be a completely new round of multilateral talks 
or just bilateral talks with the United States.  Park also 
observed that the DPRK is currently being run with an agenda 
designed by and for the military and they would not deviate 
from their plans.  He did not believe that the DPRK is 
practicing gamesmanship or testing boundaries with the 
missile launches and nuclear tests but that their actions 
were being driven by internal turmoil.  The DPRK leadership 
was on a proscribed course and they intend to follow through. 
 Park said he would also seek to meet with the two detained 
U.S. journalists; he would tell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that nothing good could come from holding them longer.  DPRK 
was looking for a way to resolve the situation but must "save 
face." Park said he would check in with post upon his return 
from Pyongyang, on or around July 10.  End Summary. 
 
------------------------------ 
Professor Park's Relationships 
------------------------------ 
 
¶2.  (C) Pol M/C on July 1 met with North Korea expert Han S. 
Park who teaches at the University of Georgia and also serves 
as the Director of the Center for the Study of Global Issues. 
 A widely recognized authority on North Korea, with friendly 
relations with many North Korean cadres and leaders, Park 
contacted Pol M/C to brief us on the issues that he would 
raise during his upcoming trip, July 4-8, to Pyongyang.  Park 
said that he had been to North Korea over 40 times and had 
deep, long-term relationships with people in the DPRK's 
Foreign Ministry and members of the Asia Pacific Peace 
Committee who also have influence with the leadership.  Park 
specifically named Han Song-ryol, Li Gun and Kim Gye-kwan of 
the Foreign Ministry as persons with whom he had a close 
relationship.  He also named Pak Ki-byun and Li Jyon-pyo Qm 
the Asia Pacific Peace Committee as close contacts.  Park 
noted that Li Jyon-pyo in particular was very well connected 
with the leadership in Pyongyang, especially Kim Jong-il. 
Park said he would depart Seoul for Beijing on July 2 where 
he would obtain a visa to travel to Pyongyang, and leave 
Beijing on July 4, stay in the DPRK until July 8 then fly to 
Shenyang to meet with Chinese authorities.  On July 9, Park 
plans to return to Seoul and requested a meeting with Emboffs. 
 
---------------------------------------- 
Current Relations and Military Influence 
---------------------------------------- 
 
¶3.  (C) Park said that rel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ROK and DPRK were rapidly deteriorating, possibly the worst 
he had seen for some time.  When asked why Pyongyang shut 
down talks when the new U.S. administration was ready to 
engage, Park said that Pyongyang alone was not responsible 
for the decision and that at the moment decisions in North 
Korea were made by and for the military.  Park said the 
atmosphere in Pyongyang was initially hopeful that the new 
U.S. administration would directly engage the leadership and 
open a dialogue, but the USG made no move to engage and 
"acted like it didn't know what to do" with the DPRK for 
months.  Still, Park said, Pyongyang had made a serious 
mistake in making premature judgments of the new U.S. 
administration, resulting in the missile launch and second 
nuclear test, but that the DPRK military was simply following 
a schedule that was laid out some time ago.  Park 
characterized the military's thinking as one-track with no 
room for re-adjustment.  In Park's estimation, many of 
Pyongyang's actions were dictated by their current domestic 
situation.  Park did not believe that the DPRK was practicing 
gamesmanship in an attempt to bait the USG or test the ROK. 
The DPRK "does not have that kind of maneuvering room" and 
there was no margin for error.  All of these actions were a 
"script designed by the military" and the leadership was 
carrying it out.  The leadership in Pyongyang was more than 
capable of critical analysis and they realize their 
shortcomings, but it was impossible to express this through 
the chain of command.  However, Park also characterized the 
regime as having a "kamikaze" mentality. 
 
--------------------------------------------- --------- 
Succession, Deficiencies and the Legacy of Kim Il-sung 
--------------------------------------------- --------- 
 
¶4.  (C) On the issue of succession, Park said that Kim 
Jong-un was designated as the heir because of "clear 
deficiencies" in the other two sons who were too well known 
and have too much "baggage."  According to Park, the 
succession would not be too turbulent and Kim Jong-un would 
not have much power.  His position would be largely symbolic 
and he would be controlled by others in Pyongyang; the DPRK 
would move towards a more collective leadership. 
 
¶5.  (C) The true leader in North Korea remained Kim Il-sung, 
because the DPRK was still following his policies, thoughts 
and writings.  Park called the regime a theocracy pointing 
out that official documents must measure the year in terms of 
Kim Il-sung's birth.  For example, the year 2009 is 
considered Juche minus 3 because we are currently three years 
away from celebrating what would be the centenary of Kim 
Il-sung's birth. 
 
----------------------------- 
Two AMCIT Journalists and 6PT 
----------------------------- 
 
¶6.  (C) Park mentioned that as the trial of the two AMCIT 
journalists was over, the situation was no longer in the 
hands of the military only; others may be able to influence 
the process.  On this trip he would see what could be done 
now that the trial was over.  The DPRK leadership was looking 
for a face saving way out of the dilemma. 
 
¶7.  (C) On the Six-Party Talks, Park believed that the DPRK 
would not return to the table.  They never wanted to be a 
part of it and were lured in by the rewards and the boost in 
international image, but their attitude soured because 
promised benefits did not materialize.  During the 6PT, 
Pyongyang also felt quite isolated and ganged up on by the 
five parties.  Perhaps there could be "multilateral talks," 
but that must include a new structure or a new roster of 
member states.  Above all, the North Koreans wanted bilateral 
talks with the United States. 
 
¶8.  (C) COMMENT: Professor Park has a long history of 
contacts with North Korea officials.  Not surprisingly, Park 
can often appear more of an apologist for North Korea than an 
analyst.  Still, we have found his views generally helpful in 
understanding North Korean thinking and motives.  More than 
that, we hope that Park can convey some of his broader, more 
realistic perspectives he has acquired from living and 
teaching in Georgia over the past 40 years. 
STEPHENS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Propaganda and Psychological Operations]
3)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4)
[Korea (North)]
5)
[Korea (South)]
6)
POL M/C Joseph Y. Yun.
7)
번역 주: 현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
8)
번역 주: 현 외무성 미국국 국장
9)
번역 주: 두 사람 이름이 틀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