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방북 결과, 북한은 자국이 초기조치 합의를 이행한다고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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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1439 07SEOUL1439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 기 밀 SEOUL 00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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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언에 의해 분류된 수정본2)
  •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05/14/2017
  • 태그: PGOV3), PREL4), KS5), KN6)
  • 제 목: 열린우리당 방북 결과: 북한은 자국이 초기조치 합의를 이행한다고 다짐
  • 참조: SEOUL 1387
  • 참조하는 전문: 07SEOUL3515
  • 분류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 근거 1.4(B,D)
  •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3/08/23 11:47

요점

1. (기밀) 요점: 잠재적인 대통령 후보인 김학규 의원이 이끄는 5명의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은 5월 2~5일 평양 방문에 관해 버시바우 대사와 5월 9일 회동해 브리핑하였다. 김학규는 북한 측이 강조한 내용은: (가) 2.13 “초기조치” 합의에 대한 이행을 다짐; 그리고 (나) 미합중국과의 수교를 열망. 김학규는 이번 방북 대표단은―모두 동북아평화위원회 소속 의원―미국과 북한 사이 신뢰 구축을 돕기 위한 일환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대표단은 방코델타아시아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북미 간 신뢰가 저하될 거라고 두려워한다.

2. (기밀) 이화영 의원은 이번 7월 4일은 남북관계 개선을 목표로 한 1972년 남북 공동 성명 35주년이 되는 날이며, 북한은 사상 처음으로 국제정치포럼을 주최하길 원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그렇다면 포럼은 포괄적으로 다양한 견해를 반영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 하는 이광재 의원은 북한은 특히 방코델타아시아(이하 BDA) 처리 방식을 놓고 중국에 대해 일부 불신을 품고 있었다고 발언하였다. 김학규는 이러니 미국과 한국이 6자 회담 진전에 (반 발짝 뒤가 아닌) 발맞춰 대북 원조를 제공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견지하였다. 이광재는 북한에는 경쟁관계의 두 계파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국제사회에 참여하길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구식 사고방식에 찬동하는 사람들이다. 요점 끝.

북한의 메시지: 2.13 합의를 이행할 계획

3. (기밀) 국회에서 친노 계파의 일원으로 대통령 후보로 출사표를 던질 공산이 있는 김학규 의원은 자신과 4명의 열린우리당 북동아평화위원회 소속 의원은 방코델타아시아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북한이 2.13 초기조치 합의를 이행할 생각인지 알아보기 위해 5월 2~5일 평양에 갔다고 버시바우 대사에게 5월 9일 말하였다. 최승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비롯해 북한의 대화 상대역들은 반복적으로 2.13 합의를 이행할 거라고 말하였다.

4. (기밀) 김학규는 여타 현안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북미 간의 상호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북한사람들에게 방북대표단이 말했다고 했다. 김학규는 미국의 정책과 문화를 잘 이해하는부 사람으로서 자신도 생각을 같이 한다고 말하였다. (주석: 김학응규는 1971년~1991년을 미국에서 살았고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으며, 뉴욕한인 경제인 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실 국장으로 발탁함으로써 한국 정치에 참여하도록 설득하였다. 김학규는 2003년 한나라당을 떠나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였다. 주석 끝.) 북한의 응답은 진실로 미국과의 수교를 원한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이런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해 달라고 열린우리당 대표단에 요청하였다. 김종률 의원은 북한이 초기조치 합의를 준수하는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고 대표단에 말했다고 덧붙였다. 만일 북한이 합의를 준수하지 않으면 단지 미국의 신뢰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신뢰를 잃게 된다. 그는 미국은 약속을 지키며, 심지어 미국 영화에서도 등 뒤에서 칼을 꽂는 등장인물을 전혀 볼 수가 없다고 북한 대화상대역에 언급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김정일이 미국 영화 보기를 좋아하니 그 말 잘했다고 재담을 하였다.

푸에블로호의 미국 귀환

5. (기밀) 김학규는 북한이 신뢰 구축을 위해 주도권을 잡는 게 중요하며, 단지 미국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와의 관계에서도 USS 푸에블로호의 귀환 문제는 김정일에게 신뢰를 구축하는 좋은 기회라고 대화상대역에 말하였다. 그는 북한이건 미국이건 푸에블로호를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게 없으므로 푸에블로호를 귀환시키면 친선 관계를 구축하는 상징적인 표시가 될 것이다. 김학규는 방북 대표단이 평양에 오기 전에 미국과 협의를 했는지 물었고, 김학규는 이에 부인했다면서 북한 사람들이 이러한 제안에 대해 얼마나 놀라운 반응을 보였는지 설명하였다. 김종률 의원은 북한사람들은 방북대표단의 제안에 대해 얼굴을 붉히며 기분이 나쁜 모습이었다. 그들은 프에블로호는 미국의 공격 증거물이기 때문에 교육 자료로 사용했다고 말하였다. 김혁규는 “교육 자료로 그렇게 많이 활용했으면, 왜 돌려보내지 않느냐?”라고 말했다고 했다. 김종률은 만일 북한이 푸에블로호를 귀환시키면, 북한이 변했고, 믿을 수 있겠다는 증명이 될 거라고 대화상대역들에게 말했다고 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 문제는 복잡하다고 언급하였다. 법적으로 푸에블로호는 북한의 재산이 아니라, 그런 근거에서 미국에 돌려줘야만 한다. 그와 동시에, 푸에블로호의 귀환이 미국에 긍정적인 충격파가 있을지, 오히려 북한에 대한 해묵은 적대감만 재점화시킬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하였다. 이광재는 북한 사람들이 똑같은 우려를 제기했다고 말하였다.

6.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이 약속을 지키는 국가라고 북한에 확신을 심어준대 대해 방북 대표단에 감사하였다. 특히 대사는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구심을 들었던 차에 그렇다고 했다. 그는 현재 북미 간에 신뢰는 매우 보잘것없다고 확인하였다. 한미 공동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1992년과 1994년 비핵화 약속을 깬 바 있다. 그러나 6자 회담은 더 낳은 협상 틀이라고 대사는 말하며, 이제 2005년 9.19 공동성명, 그리고 2.13 초기조치 합의와 더불어 앞으로 가길 원한다고 했다. 2.13 초기조치 합의는 분명한 공약과 시간표를 마련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미국정부는 생각한다고 대사는 말하였다.

7.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수교 수립과 관련해 2.13 초기조치 합의에 서명하고 30일 이내에 북미 실무작업반 모임을 한 점에서 방증 되듯이 미국은 수교 절차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비핵화 과정과 비핵화 과정도 마찬가지로 수교 과정과 맞물려 진행되어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 만일 모든 일이 잘되면, 2008년에 해당 사항이 달성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우리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제시하듯이 수교 수립을 먼저 하지는 않겠지만, 예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제외한다든지, 경제 인도적 교류에 나서는 일을 고려하는 등 북한과의 신뢰구축에 보탬이 되는 즉각적인 조처에 나설 수 있다. 북한에 대사관을 개설하는 문제는 마지막 단계가 된다. 이러한 모든 조치의 선제조건은 당연히 북한이 영변을 폐쇄하고 불능화하고, 모든 핵 프로그램을 선언하고, 마지막에는 모든 자체 핵무기와 프로그램을 해체함으로써 비핵화의 과정을 밟아 나가는 것이다.

북한: 우리는 초기조치 합의를 준수할 것

8. (기밀) 김혁규는 북한이 방코델타아시아 문제가 해결되면 바로 국제원자력기구 조사관을 초청해야 한다고 열린우리당 방북대표단이 제안했다는 말로 응답하였다. 북한 대화상대역들은 2.13 초기조치 합의를 준수하겠다고 반복적으로 말하였다. 김혁규는 미국이 인내심을 보여준대 감사한다고 했다. 미국은 강하고 북한은 약한 나라이니, 이제 미국이 북한을 “포용”할 기간이다.

9.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북한이 초기조치 합의를 이행할 계획이라는 북한의 확언은 그렇게 하는 게 늦기는 했지만, 고무적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2.13 초기조치 합의에 서명해서 획득한 선의와 중유 등의 혜택을 놓쳐버리고 있다고 그는 언급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외교적 해결책 모색을 다짐한 바 있다. 부시 대통령이 작년 하노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이하 APEC) 회담 중에 노 대통령에게 말했듯이, 미 합중국은 공식적으로 한국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부시 대통령의 그런 행보는 김정일과 함께 그런 합의에 서명하기에 어려운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북한이 비핵화 준비에 달려 있다.

열린우리당 방북단, ‘북과 7.4 평양대토론회 합의’ 지난 2-4일까지 평양을 방문했던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회 남북경제교류협력추진단(단장 김혁규)은 오는 7월4일 6.15 남북공동선언 7주년, 7.4 남북공동성명 35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평양 대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6일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열린우리당 방북단, ‘북과 7.4 평양대토론회 합의’를 읽어보라.

7.4 남북공동성명 35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회의

10. (기밀) 비공식 채널을 통해 3월 이해찬 전 총리의 평양 방북을 준비하는 데(참조 전문) 산파 역할을 한 이화영 의원은 북한의 대화상대역들은 미국과 수교를 수립하고, 영변 핵 시설을 폐쇄하겠다는 열의가 넘쳤다; 그들의 태도는 이전 세 차례의 평양 방문 때보다 더욱 솔직하였다.

11. (기밀) 이화영은 북한 대화상대역들은 북한이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3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7월 4일 평양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길 원한다고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우리당 대표단에 말했다고 전했다: 1) 북한과 남한은 평화와 대화를 추구한다는 점을 전 세계에 알린다. 이 일은 2007년 12월 한국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에도 유리한 일이라고 미소를 지으며 그는 말하였다; 그리고 2) 미국에 평화를 다짐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광재는 7월 4일 국제 포럼은 북한이 주최하는 첫 번째 정치 행사가 될 거라고 덧붙였다. 이 일이 북한의 제안인 만큼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 이목을 끌기 원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버시바우 대사는 국제회의라는 개념은 흥미롭지만, 북한이 남한이나 여나 국가 출신의 다양한 견해를 대변하는 사람들을 초청하길 희망한다고 말하였다. 어쨌든 1972년 7.4 공동성명에 서명한 사람은 박정희였다.

북한은 특히 BDA 문제 이후, 중국을 불신해

12. (기밀) 이화영은 중국이 BDA 문제 지연의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고 북한은 믿는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대북원조를 중국에 의존하는 점에도 역시 분통해했다. 그러므로 미국이 이번 기회를 활용해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논평: 이런 견해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의 확대에 대한 한국의 고뇌와 일치한다. 논평 끝.) 버시바우 대사는 이런 모든 게 북한이 BDA 문제를 뛰어넘어 6자 회담에서 미국과 다시 교섭하려는 이유라고 말하였다.

북한의 교섭 찬성파와 전통적인 계파

13. (기밀) 이광재는 북한에는 두 개의 계파 간의 경쟁이 있다고 말하였다: 국제 사회에 합류하길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과거의 사고방식”에 매몰된 사람들이다. 전자는 경제적인 확장을 원하지만, 현재 (개성공업지구로) “전략적인 물자” 반입이 금지되어 있어, 이 그룹은 더 보수적인 세력의 공격에 취약하다. 이광제는 어째서 대화 상대역들이 “개성공단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우리는 매우 실망했다.”라고 말했는지 설명하였다. 그는 북한이 2.13 초기조치 합의를 이행하는 쪽으로 원대 복귀하고 나면, 미합중국이 친 포용정책 그룹의 입장을 강화해주는 경제적 조치를 이행해야만 한다고 말하였다. 결국에는 누가 “북한에 더 많은 빵을 가져올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논평

14. (기밀) 많은 전문가는 김혁규의 방북이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추정한다. 한때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 하는 이광제는 방북 대표단에 합류함으로써 방북단이 대통령의 임무수행에 나섰다는 추정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경상도 출신의 김혁규는 차기 대통령으로 노무현의 정치적 비전을 수행할 수도 있는 영남 출신 온건파라는 노무현의 비전에 딱 들어맞는다.
버시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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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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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R R E C T E D COPY CLASSIFIED BY STATEMENT 
 
E.O. 12958: DECL: 05/14/2017 
TAGS: PGOV PREL KS KN
SUBJECT: URI PARTY VISIT TO PYONGYANG: DPRK SAID IT IS 
COMMITTED TO INITIAL ACTIONS AGREEMENT 
 
REF: SEOUL 1387 
 
CLASSIFIED BY: AMBASSADOR ALEXANDER R. VERSHBOW 
FOR REASONS 1.4(B,D) 
------- 
SUMMARY 
------- 
 
¶1. (C) SUMMARY: Five Uri Party parliamentarians, led by 
potential presidential candidate Rep. Kim Hyuk-kyu, met with 
the Ambassador on May 9 to brief him on their May 2-5 trip to 
Pyongyang.  Kim said that the North Korean side had stressed: 
(a) its commitment to implementing the February 13 "Initial 
Actions" agreement; and (b) its eagerness to establish 
diplomatic ties with the United States.  Kim said that his 
delegation -- all members of Uri's Northeast Asian Peace 
Committee -- visited Pyongyang in part to help build trust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which it feared would 
diminish if the Banco Delta Asia (BDA) issue were not 
resolved soon. 
 
¶2. (C) Rep. Lee Hwa-young said that this July 4 would be the 
35th anniversary of the 1972 North-South Joint Communique for 
improving inter-Korean relations and that the North wanted to 
host an international political forum -- its first -- for the 
occasion.  The Ambassador remarked that if so, the forum 
should be inclusive, reflecting diverse points of view.  Rep. 
Lee Kwang-jae, who is considered to be President Roh 
Moo-hyun's "right-hand," remarked that North Korea harbored 
some distrust of China, especially in the way it handled BDA, 
and that it did not like being so dependent on China for aid. 
 This was why, Kim Hyuk-kyu maintained, the U.S. and ROK 
should give aid to North Korea in tandem with (not a 
half-step behind) Six-Party Talks (6PT) progress.  Lee 
Kwang-jae described two competing factions in North Korea: 
those who wanted to jo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those who still subscribed to the old way of thinking.  END 
SUMMARY. 
 
--------------------------------------------- ------ 
DPRK'S MESSAGE: PLAN TO IMPLEMENT FEB. 13 AGREEMENT 
--------------------------------------------- ------ 
 
¶3. (C) Rep. Kim Hyuk-kyu, part of the pro-Roh faction in the 
National Assembly and likely to make a bid for the 
Presidency, told the Ambassador on May 9 that he and four 
other members of Uri's Northeast Asia Peace Committee 
(reftel) went to Pyongyang May 2-5 to see if North Korea 
intended to implement the steps outlined in the February 13 
Initial Actions agreement once the BDA issue was resolved. 
DPRK interlocutors repeatedly said yes, including Vice Chair 
of the Asia Pacific Peace Committee, Chae Song-chol. 
 
¶4. (C) Kim said they told the North Koreans that it was 
important to establish mutual trust between the U.S. and DPRK 
as a means to resolve other issues.  Kim said he shared his 
views as someone who understood American politics and culture 
well.  (NOTE: Kim lived in the U.S. from 1971 to 1991 and 
became a successful businessman, serving as president of the 
Korean Businessmen's Association of New York.  Former 
President Kim Young-sam persuaded him to join Korean politics 
by appointing him Senior Secretary for Civil Affairs at the 
Blue House.  Kim left the GNP in 2003 and joined the Uri 
Party.  END NOTE.)  The DPRK's response was that it truly 
wanted diplomatic ties with the U.S.; the North Koreans asked 
the Uri delegation to convey this message to the U.S.  Rep. 
Kim Jong-yull added the delegation had said that the world 
was watching to see if the DPRK abided by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If it did not, it would lose the trust of the 
world, not just the U.S.  He had remarked to their 
interlocutors that the U.S. kept its word -- even in American 
movies, you never saw characters who stabbed people in the 
back.  The Ambassador quipped that this was good, since Kim 
Jong-il liked to watch U.S. movies. 
 
-------------------------------- 
RETURNING THE PUEBLO TO THE U.S. 
-------------------------------- 
 
¶5. (C) Kim Hyuk-kyu had told his interlocutors that it was 
important for the DPRK to take the initiative to build trust, 
and said returning the USS Pueblo would be a good opportunity 
for Kim Jong-il to do that -- not just with the U.S., but 
also with the rest of the world.  He noted that neither the 
DPRK nor the U.S. would be able actually to use the Pueblo, 
so returning it would be a symbolic expression of building 
friendship.  Kim recounted how the North Koreans had reacted 
with surprise to this suggestion, asking if the delegation 
had consulted with the U.S. before visiting Pyongyang, which 
Kim denied.  Rep. Kim Jong-yull added that the North Koreans 
were unhappy and became red-faced at the delegation's 
suggestion.  They had said they used the Pueblo as 
educational material because it was proof of U.S. attacks. 
Kim Hyuk-kyu said he had told them, "Since you've done so 
much education, why not return it?"  Kim Jong-yull said that 
he had told their interlocutors that if the DPRK returned the 
Pueblo, it would prove that that DPRK had changed and could 
be trusted.  The Ambassador remarked that this was 
complicated.  Legally, the Pueblo was not the property of the 
DPRK, so the DPRK should return it to the U.S. on those 
grounds.  At the same time, he said he doubted that returning 
it would have a positive impact on the U.S. and might even 
rekindle old animosity toward North Korea.  Lee Kwang-jae 
said that the North Koreans had raised the same concerns. 
 
¶6. (C) The Ambassador thanked the delegation for its 
assurances to North Korea that the U.S. was a country that 
kept its word, especially since he had doubts about what 
North Korea intended to do.  He confirmed that there was 
currently very little trust between the U.S. and DPRK.  From 
the joint U.S.-ROK perspective, North Korea had broken its 
promises to denuclearize made in 1992 and 1994.  But the 
Six-Party Talks (6PT) were a better framework, the Ambassador 
said, and now we wanted to move forward with the September 
19, 2005 Joint Statement and the February 13 Initial Actions 
agreement.  He said the USG thought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was very significant because it established clear 
commitments and timetables. 
 
¶7. (C) Regarding establishing diplomatic ties, the Ambassador 
said that the U.S. was ready to begin the process, as 
evidenced by the first U.S.-DPRK working group meeting within 
30 days of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being signed.  But 
the USG believed the process must proceed in parallel to the 
denuclearization process as well as the process of 
establishing a peace regime.  If everything went well, 
hopefully these could be achieved in 2008.  We would not be 
able to establish diplomatic ties first, he said, as the Uri 
members were suggesting; but we could take intermediate steps 
to help build trust with North Korea, such as considering 
removing the DPRK from the State Sponsors of Terrorism list, 
reviewing the Trading with the Enemy Act, and engaging in 
economic and humanitarian exchanges.  Opening an Embassy in 
the DPRK would be the last stage.  The prerequisite for all 
these steps, of course, would be North Korea moving down the 
path of denuclearization by shutting down and then disabling 
Yongbyon, declaring all nuclear programs, and finally, 
verifiably dismantling all its weapons and programs. 
 
--------------------------------------------- ------- 
DPRK: WE WILL ABIDE BY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 ------- 
 
¶8. (C) Kim Hyuk-kyu responded by saying that the Uri 
delegation had suggested that North Korea should invite the 
IAEA inspectors back once BDA was resolved.  Their 
interlocutors had repeatedly said that they would abide by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Kim said he appreciated that 
the U.S. had been patient.  Since the U.S. was strong and the 
DPRK was weak, perhaps it was time for the U.S. to "embrace" 
North Korea. 
 
¶9. (C) The Ambassador said that he was encouraged by the 
North Koreans' assurances that the DPRK plans to implement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even if it was late doing so. 
But, he remarked, the DPRK was losing out on benefits such as 
heavy fuel oil (HFO) and the goodwill it had gained by 
signing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President Bush was 
committed to finding a diplomatic solution.  As he had told 
President Roh during the APEC meeting in Hanoi last year, the 
U.S. was prepared to officially end the Korean War and 
establish peace, as much as he might find it difficult to 
sign such an agreement with Kim Jong-il.  This would depend 
on North Korea's readiness to denuclearize.  If we could put 
 
 
--------------------------------------------- -------------- 
INTERNATIONAL CONFERENCE TO COMMEMORATE 35TH ANNIVERSARY OF 
THE NORTH-SOUTH JOINT COMMUNIQUE 
--------------------------------------------- -------------- 
 
¶10. (C) Lee Hwa-young, who was instrumental in setting up 
former PM Lee Hae-chan's March visit to Pyongyang through 
unofficial channels (reftels), said his interlocutors were 
energized about establishing diplomatic ties with the U.S. 
and shutting down the Yongbyon nuclear facility; their 
attitude was more forthcoming than during his previous three 
visits to Pyongyang. 
 
¶11. (C) Lee Hwa-young said that North Korean interlocutors 
had told the Uri delegation that they wanted to host an 
international meeting in Pyongyang on July 4th to commemorate 
the 35th anniversary of the 1972 North-South Joint 
Communique, for two reasons: 1) to let the world know that 
the North and South were pursuing peace and dialogue, which 
would also be advantageous to the Uri Party in advance of the 
Dec. 2007 ROK presidential elections, he said, smiling; and 
2) to convey a message of commitment to peace to the U.S. 
Lee Kwang-jae added that the July 4 international forum would 
be the first political event that the DPRK would be hosting. 
Given that this was the DPRK's suggestion, he sensed that it 
wanted to draw attention to making peace on the Peninsula. 
The Ambassador said that the notion of an international 
conference was interesting, but he hoped that the DPRK would 
invite people who represented diverse points of view, both 
from South Korea and other countries.  After all, it was Park 
Chung-hee who had signed the 1972 Communique. 
 
--------------------------------------------- -- 
DPRK DISTRUSTFUL OF CHINA, ESPECIALLY AFTER BDA 
--------------------------------------------- -- 
 
¶12. (C) Lee Hwa-young said that the North Koreans believed 
that China was partially to blame for the BDA delays, and 
were also resentful of their dependence on China for aid. 
Hence, the U.S. should take advantage of this window of 
opportunity to improve relations with the DPRK.  (Comment: 
This view is consistent with ROK angst about China's growing 
influence in the DPRK.  End Comment.)  The Ambassador said 
that this was all the more reason for North Korea to get 
beyond BDA and re-engage with the U.S. in the 6PT. 
 
--------------------------------------------- -- 
PRO-ENGAGEMENT AND TRADITIONAL FACTIONS IN DPRK 
--------------------------------------------- -- 
 
¶13. (C) Lee Kwang-jae said that in the DPRK, there was 
competition between two factions:  those who wanted to jo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those who were still 
entrenched in the "old way of thinking."  The former wanted 
to expand economically, but now that "strategic materials" 
were banned from entering North Korea (to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the group was vulnerable to attack 
from more conservative forces.  Lee recounted how their 
interlocutors had said, "Don't even mention KIC -- we're very 
disappointed."  He said that once North Korea was back on 
track implementing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the U.S. 
should implement economic measures to strengthen the position 
of the pro-engagement group.  In the end, it was about who 
"could bring more bread to North Korea." 
 
------- 
COMMENT 
------- 
 
¶14.  (C) Many pundits speculate that the purpose of Kim 
Hyuk-kyu's visit was to set up a summer summit.  That Lee 
Kwang-jae, once considered the "right hand" of President Roh, 
joined the group lends weight to speculation that the group 
was on a presidential mission.  Kim, from South Gyeongsang 
Province, fits Roh's vision of a moderate from the southeast 
who might be able to carry on Roh's political vision as the 
next president.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C O R R E C T E D COPY CLASSIFIED BY STATEMENT
3)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4)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5)
[Korea (South)]
6)
[Korea (North)]